[야고부-한윤조] 주거 욕망의 지형

입력 2026-10-07 15:26:55 수정 2026-10-07 15: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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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조 논설위원
한윤조 논설위원

국제 해비타트의 '집, 그 대가는 무엇인가?(Home at What Cost?)' 보고서는 한국 사회의 주거 불안과 욕망의 지형을 정밀하게 보여준다. 한국 무주택자의 38%가 평생 내 집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한 현실은 글로벌 평균(23%)을 훨씬 뛰어넘는다. 캐나다(56%), 호주(52%), 미국(42%) 등 고소득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암담함은, 집이 더 이상 거주의 기본권이 아닌 자산 격차를 극명히 가르는 거대한 진입장벽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인이 주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은 요소다. 글로벌 평균이 '안전감(40%)'을 1순위로 꼽은 반면, 한국인의 53%는 '충분한 공간과 사생활 보호(프라이버시)'를 선택했다. 치안과 상하수도 같은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진 사회에서, 사람들의 욕망은 외부 위협을 막는 1차적 방어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나만의 정서적 안전지대'로 옮겨간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한국인이 갈망하는 진정한 주거의 조건인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주거비 부담이 삶의 기본적 조건을 옥죄는 방식은 전 세계가 닮아 있다. 응답자의 75%가 주거비를 감당하기 위해 식비, 의료비, 교육비 등 필수 지출을 줄였다고 밝혔다. 특히 미래를 일궈가야 할 청년세대의 아픔은 더욱 깊다. 주거비 부담 때문에 가족을 꾸리기 어렵다는 응답이 MZ세대(18~45세)에서 62%에 달한다는 사실은, 주거 문제가 개별 가구의 고통을 넘어 사회의 재생산 구조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 세계 응답자의 절반 이상(56%), 한국인의 47%가 자국의 주거 시스템이 고장 났다고 인식한다. 집이 삶의 안식처가 아닌 미래를 압박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 사회는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조너선 렉퍼드 해비타트 CEO의 지적처럼, 집이 제공해야 할 기본적 가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채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는 미래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생활이 보장되는 충분한 공간을 원하고, 주거 부담 없이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사회. 고장 난 주거 시스템을 수리하는 일은 바로 그 당연한 삶의 기대를 복원하는 데서 시작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