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을 언제 알 수 있느냐에 따라 재화는 탐색재, 경험재, 신뢰재로 나눈다. 옷처럼 사기 전에 품질을 살펴볼 수 있는 재화가 탐색재다. 음식은 소비한 뒤에야 품질을 아는 경험재다. 소비 후에도 품질을 판단하기 어려운 재화를 신뢰재라 한다. 말 그대로 믿고 쓴다. 이런 구분은 '정보 비대칭'과 연결된다. 소비 전에 품질을 알기 어려운 경험재는 정보 비대칭이 크다. 그만큼 소비자가 생산자보다 불리하다.
영화는 대표적인 경험재다. 관객이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감독과 배우, 줄거리, 예고편 정도다. 더구나 광고와 예고편은 영화사가 만든다. 멋있거나 재미있는 장면만 보여준다. 지루한 부분은 감춘다.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만 알리는 것이 'PR'이다. 반면 영화사와 감독, 배우는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잘 안다. 모를 수가 없다. 내용을 잘 모르고 영화를 찍었다는 말은 거짓이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영화에 관한 정보가 늘어난다. 시사회가 끝나면 소위 평론가들이 평가를 가장한 홍보를 시작한다. 영화가 일반 관객에게 개봉되면 별점, 관객 후기, 입소문이 퍼진다. 이제 영화사가 만든 정보는 힘을 잃는다. 그래도 정보 비대칭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관객은 정보가 부족한 채로 영화관에 들어간다.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두 명의 평가가 흥행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두 명 모두 추천한 영화는 개봉 첫 주 수입이 25% 높았다. 드라마 장르는 65%나 높았다. 액션과 코미디는 평론가 효과가 없었다. 다른 연구에서는 평론가 평가와 누적 수입 사이에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평론가는 관객을 움직이는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흥행할 영화를 먼저 알아보는 선지자(先知者)에 가깝다.
쓸 만한 정보는 이미 영화를 본 관객의 평가에서 나온다. 바로 입소문이다. 이를 '구전(口傳) 효과'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영화를 좋게 말하는지 나쁘게 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이 언급되는지가 중요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과 언급은 수요를 늘린다. '노이즈 마케팅'은 실재한다. 2002년 개봉한 영화 40편과 관련 게시판 글 1만 2천 개를 분석한 연구에서 이러한 결과가 확인됐다.
영화에 대한 개봉 전 기대와 개봉 후 평가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 차이는 빠르게 줄어든다. 개봉 후 4주 동안 20만 명이 본 영화는 차이가 50% 줄었고, 100만 명이 본 영화는 90% 이상 줄었다. '학습 효과'는 주로 개봉 초기에 나타났다. 1982~2000년 미국 영화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개봉 후 첫 주말에 예상보다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는 이후 매출 감소 속도가 느렸다. 영화 흥행의 약 3분의 1은 학습 효과로 설명됐다.
현명한 관객은 개봉 첫날 영화를 보지 않는다. 개봉 후 며칠만 지나면 입소문이 퍼진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조금 기다리면 새로운 정보가 들어온다. 관심이 없던 영화도 호평이 이어지면 보고 싶어진다. 보려던 영화도 혹평이 늘면 관심이 식는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기대를 수정한다. 이것이 '베이지안 학습'이다. 정보가 늘수록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요즘 이상한(?) 영화 한 편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제목도 이상하고 내용도 이상하다. 개봉 직후 흥행 성적은 좋았다. 감독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주인공 세 명도 나름 유명한 배우들이다. 상영관을 싹쓸이했고 홍보도 잘했다. 여기에 유명 평론가가 평점을 그럭저럭 줬다. 5점 만점에 3점이면 'so-so'다. 2점은 박하고 4점은 후하다고 생각했을까. 칭찬도 비판도 하지 않은 절묘한 점수다. 이 평점도 초반 흥행에 한몫했다.
갈수록 혹평이 쌓이고 있다. 이번에는 혹평이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 관객 증가세가 둔화됐다. 개봉관 수도 줄었다. 영화관은 냉정하다. 이른 종영이 예상된다. 이쯤에서는 이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베이지안 학습을 했다면 말이다. 이상한 영화를 보고 나서 욕해 봐야 소용없다. 이미 돈과 시간을 날린 후다. 이상한 영화는 무시하면 된다. 무시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응징(膺懲)이다.
오정일(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