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대구시 원스톱기업투자센터장
미국의 한 과학 프로그램은 전화번호부 페이지를 한 장씩 번갈아 겹친 뒤 양쪽에서 당겨 분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종이 한 장의 마찰력은 미미하지만 수백 장이 겹쳐지자, 군용 장갑차 두 대가 동원되고 나서야 겨우 분리할 수 있었다.
지역 기업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도 다르지 않다. 낡은 규제와 복잡한 행정 절차가 전화번호부처럼 겹겹이 얽히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자본을 가진 기업이라도 성장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세계적 정보통신기업인 시스코(Cisco) 전 CEO 존 챔버스는 "큰 기업이 항상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느린 기업을 언제나 이긴다"라고 말했다.
촌각을 다투는 기업에게 시간은 곧 비용이자 생명이다. 행정의 마찰력을 덜어내고 기업 투자의 골든타임을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행정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역할이다.
민선 9기를 맞아 대구시가 '규제&기업애로 119 통합지원센터'를 출범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원인이 스스로 판단해 각기 다른 창구를 두드려야 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단일화된 창구에 문의하면 분류와 배정을 행정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어떤 사안이든 '14일 이내'에 결과를 내놓도록 명문화했다. '현장 중심', '수요자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지다.
효과는 숫자로 확인되고 있다. 출범 한 달 만에 상담 건수는 평소의 3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 과정에서 한 기업의 애로를 해결하다 다른 기업의 문제까지 함께 풀리는 시너지 효과도 나타났다.
직업훈련학원 A사는 반도체 설계 교육과정을 신설하며 프로그램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업애로 자문단 소속 경영지도사의 무료 자문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중급 설계 인력 구인난을 겪던 산업장비 제조업체 C사가 센터에 상담을 요청하자, 센터는 두 기업을 연결해 줬고, 그 결과 두 기업 모두 서로 돕고 도움받는 상부상조로 이어졌다.
이런 성과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센터의 운영 방식이 있다. 행정기관뿐 아니라 법무사, 세무사, 노무사, 경영지도사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기업애로 자문단이 상시 대기하며, 단순 안내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해법을 함께 설계한다.
규제 개선에도 진전이 있다. 대표적 사례가 아스콘 다수공급자계약 특수조건 개정이다. 기존 특수 조건은 심야나 휴무일 납품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수요기관과 협의토록 규정돼 있었으나 공급업체가 수요기관에 이를 요구하기 어렵다는 제도 개선 건의가 있었다.
이에 대구시는 조달청에 건의해 심야시간 및 휴무일 납품 시, 추가비용 반영을 의무화하도록 특수 조건을 개정하였고, 2026년 하반기부터 개정된 특수 조건이 시행되면 지역 아스콘 공급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줄어 침체된 지역 건설업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안과 밖이 동시에 호응해야 한다는 '줄탁동시'(啐啄同時)처럼, 기업의 혁신 노력에 행정이 낡은 규제의 껍질을 함께 깨줄 때 양질의 일자리와 도시의 활력이 만들어진다.
기업의 성장이 곧 대구의 미래다. 대구시 규제&기업애로 119 통합지원센터는 기업이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현장에서 함께 뛰는 가장 든든한 러닝메이트가 될 것이다. 기업 활동을 옥죄는 불필요한 행정의 마찰력을 과감히 걷어내고, 현장에서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