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역 이후, 군 경력을 다시 읽는 법

입력 2026-10-01 17: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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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부산제대군인지원센터 멘토 위원 조재민.
2026년 부산제대군인지원센터 멘토 위원 조재민.

군복을 벗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지만 군인으로 살아온 시간을 사회의 언어로 바꾸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전역 이후 여러 환경을 거쳤다. 군에서는 전차 교관으로 교육훈련을 담당했고 이후 공공영역에서 평생교육사로 일했다. 지금은 민간 교육·HR 분야에서 교육을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총괄·운영하는 팀장 역할을 맡고 있다.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일이지만 돌아보면 사람을 가르치고 문제를 파악하며 제한된 여건 속에서 해결책을 만드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군에서의 경험은 전역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사회에서 활용하려면 그 경험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직무와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훈련은 교육기획과 평가 역량으로, 부대관리는 조직관리와 인력운영 역량으로, 돌발상황에 대한 판단은 위기대응과 문제해결 역량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제대군인은 군 생활을 통해 이런 역량을 쌓지만 전역 후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군에서 무엇을 했는가보다 그 경험을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계급과 보직은 전역과 함께 내려놓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역 이후에는 이런 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도 마주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전역 직후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소개로 다이어트센터에서 파트타임 코치로 일했고 이후에는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했다. 당시 조교의 보수는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전역 직전 받았던 급여와 각종 복리후생을 생각하면 차이는 컸고 생활에도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당장의 급여만은 아니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전공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군을 벗어난 사회에서 새로운 직무와 조직을 직접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단순히 '낮은 임금을 받으며 버틴 기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앞으로의 경력을 만들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이 경험은 지금도 후배 제대군인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다. 군에서 일정한 급여와 직위, 복지에 익숙했던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처음 제시받는 연봉과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직무에 도전한다면 군 복무 당시보다 낮은 보수를 받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이전 연봉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든 기회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조급한 마음에 아무 일자리나 선택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나의 다음 경력과 연결되는가'이다.

처음의 보수가 낮더라도 그곳에서 새로운 직무를 배우고 사회의 조직문화를 경험하며 실적과 경력을 쌓아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면 하나의 투자가 될 수 있다. 반면 낮은 처우를 감수하면서도 필요한 경험을 쌓거나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면 그 선택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견디는 것과 투자하는 것은 다르다.

자격증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불안 때문에 자격증부터 찾기 쉽지만 방향 없는 준비는 오래가기 어렵다. 무엇을 취득할 것인가에 앞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사회는 어떤 역량을 필요로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전역 전에 삶의 정답을 모두 정할 필요는 없다. 경력은 한 번 그려놓고 그대로 따라가는 지도와는 다르다. 새로운 일을 경험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계속 수정해 나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보다 다음 선택을 판단할 수 있는 자기만의 기준을 갖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하나의 선택이 다음 경험을 만들었고 그 경험은 다시 다음 선택의 재료가 됐다. 성공한 경험뿐 아니라 시행착오도 시간이 지나 다른 상황에서 다시 쓰였다.

후배 제대군인들이 전역 후 처음 마주한 직위나 연봉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군에서 쌓은 경험을 다시 읽고 필요한 것은 새로 배워야 한다. 때로는 다음 도약을 위해 한 단계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어야 한다.

혼자 모든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전역 직후 제대군인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사회에서 첫 일자리를 찾았다. 누군가가 내 삶의 답을 대신 정해줄 수는 없지만 상담과 멘토링, 먼저 그 길을 지나온 사람의 경험은 다음 선택을 위한 좋은 좌표가 될 수 있다.

전역은 지나온 시간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그 시간을 새로운 삶의 문법으로 다시 읽어야 하는 순간이다.

경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에서 다시 쓰일 수 있도록 그 경험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지금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