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지금 한국의 반도체 호황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미중의 기술전쟁, AI 시대의 도래, 트럼프의 대중 압박이라는 세 개의 변수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이 일약 'AI 시대의 희토류'로 등극했다.
미중의 기술전쟁 속에서 무소불위처럼 보였던 거만한 트럼프 대통령을 한국으로 오게 만들고, 시진핑의 방미에 트럼프를 공항까지 나가 영접하게 만든 것도 결국 중국의 희토류였다. "대체불가 광물" 하나가 세계 1위 패권국을 궁지로 몰았다.
세계 시가총액 1위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직접 서울로 날아와 닭을 튀기고 삼겹살을 굽고 러브샷을 한 것도 이유는 하나다. AI 모델의 하드웨어 인프라인 엔비디아의 GPU는 한국의 HBM 없이는 구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HBM이 "대체불가 광물"의 딱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운과 실력은 다르다. 운은 하늘이 주지만 실력은 내가 만든다. 한국이 지금 가장 위험하게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늘이 준 운을 내가 만든 실력으로 오해하는 순간, 방심이 시작되고 몰락이 예약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돈은 불과 같다. 잘 쓰면 문명이 되지만 잘못 쓰면 집을 태우고 마을을 태우고 나라도 태운다. 한국은 지금 심각한 '칩 플루(Chip Flu)'에 걸려 있다. 코로나도, 스페인 독감도 아닌 반도체 독감(Chip Flu)이다. 1960년대 북해 천연가스 대박을 터뜨린 네덜란드가 자원 수출에 취해 제조업을 통째로 버렸다가 경제 전체가 피폐해진 것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 부른다. 100년에 한 번 오는 기술 대변혁기에 반도체 호황에 취해 다음 판을 준비하지 않으면 한국의 HBM은 네덜란드의 가스전(田) 꼴 난다.
정부는 초과 세수 나눠 쓰기에 분주하고, 노조는 성과급 더 달라 파업하고, 지역은 반도체 단지 유치전쟁에 목숨 걸고, 주주는 배당 환원 요구로 시끄럽다. 모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데 바쁘다.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반도체 주가 하나에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청룡열차를 함께 타고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황금비를 다이아몬드비로 바꾸는 것은 전략이다. 반도체 4년 사이클과 100년 만의 기술 대변혁이 겹친 이 희귀한 기회를 칩 플루로 날려버리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HBM 너머의 '넥스트 HBM'을 지금 확보해야 한다. HBM 독점은 영원하지 않다. 중국의 CXMT는 이미 맹추격 중이고 미국 마이크론은 보조금을 등에 업고 달려온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차세대 공정, AI 반도체 설계, 패키징 기술에 올인 투자해야 한다. 지금의 황금거위를 다이아몬드 거위로 업그레이드하는 R&D 투자에 인색하면 10년 후 한국 반도체는 없다.
둘째, 반도체 생태계를 삼전닉스 2사 체제에서 피라미드 생태계로 확장해야 한다. 두 회사의 시총이 전체의 50%를 넘는 나라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볼모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키우고, 팹리스 설계 기업을 육성하고, AI 칩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과 하이닉스 두 회사의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구조는 국가 안보 리스크다.
셋째, 즐기되 취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와 자본시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초과 세수는 나눠 쓸 게 아니라 반도체 인재 양성과 인프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주주 환원과 노동 분배도 단기 배당이 아닌 장기 공동성장 계약으로 바꿔야 한다. 호황기에 냉정하게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불황기에 반도체 전체가 흔들린다.
하늘이 준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이 준 기회를 망치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지금 한국에 절실한 것은 돈벼락의 갈라먹기가 아니다. 운을 실력으로 바꾸는 전략이다.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은 쉽지만 다이아몬드 거위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어렵다.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으면 한국의 반도체 천운(天運)은 그냥 운으로 끝난다. 한국 반도체의 적은 중국도, 마이크론도 아니다. 호황에 취해 내일을 잊은 한국 자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