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환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대학다운 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좋은 건물과 첨단 연구시설이 있는 대학, 취업률이 높고 연구비가 많은 대학을 떠올릴 수도 있다.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학다움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대학에는 기업이나 정부기관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 있어야 한다.
대학은 조금 엉뚱한 생각도 허용되는 곳이어야 한다. 당장 쓸모를 증명하기 어려운 연구를 하는 교수도 있고, 전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학생도 있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보겠다는 시도가 실패했다고 해서 곧바로 무능으로 평가받아서도 안 된다. 정답을 빨리 찾는 것보다 기존의 정답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존중받는 곳, 그것이 대학다운 대학의 모습이 아닐까. 황당한 실패, 엉뚱한 질문, 어리석은 도전이 시도되는 공간인 대학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도 충분히 시끄럽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해 학과를 개편하고,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계획서를 만들고, 첨단산업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새로운 전공을 만든다. AI가 중요해지면 AI를, 반도체가 중요해지면 반도체를 이야기한다. 문제는 대학이 시끄러운 이유이다. 새로운 생각과 실험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길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시끄럽다는 데 있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면 대학들은 빠르게 움직인다. 평가 기준이 만들어지면 그 기준에 맞추고, 새로운 사업이 나오면 비슷한 조직과 교육과정을 만든다. 대학마다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혁신의 모습은 서로 닮아간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조금 더 빨리 달리는 것을 혁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학에는 효율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여백이 필요하다.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효율과 성과를 추구해야 하고 공공기관도 정해진 절차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대학마저 모든 활동을 단기간의 성과와 숫자로 판단한다면 새로운 생각이 자라날 공간은 줄어든다. 새로운 학문과 기술, 문화는 이미 정해진 길을 가장 효율적으로 따라간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질문을 던진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은 개성이 넘치는 공간이어야 한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음악을 연주하는 학생도 만나고, 낯선 주제로 토론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공학자가 예술가를 만나고 사회과학자가 의학자와 대화하며, 학생이 교수에게 거리낌없이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전공, 세대가 부딪히고 섞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대학의 다양성은 관리해야 할 불편함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자산이다.
대학은 지역의 문화적 중심이기도 하다. 좋은 대학이 있다는 것은 좋은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연과 전시, 강연과 토론이 열리고 새로운 생각과 생활양식이 지역사회로 퍼져나가는 지적·문화적 공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방정부나 기업이 당장의 현실 때문에 시도하기 어려운 해법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지역사회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곳이 대학이라면, 대학은 그 자체로 지역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공간은 실패할 자유도 필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교수와 학생의 작은 아이디어에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이 충분히 검증된 일만 허용한다면 그것은 혁신이라기보다 관리에 가깝다. 실패하지 않는 대학보다 실패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대학이 더 대학다울 수 있다.
대학다운 대학은 조용하고 완벽하게 정돈된 대학이 아니다. 조금은 시끄럽고, 엉뚱하며,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고 아직 답을 알 수 없는 시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대학의 경쟁력은 다른 대학과 얼마나 비슷해졌는가가 아니라 그 대학에서만 가능한 생각과 계획이 얼마나 많이 시도되고 있는가에 있다. 대한민국의 대학에는 더 많은 시끄러움이 필요하다. 다만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 위한 시끄러움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한 시끄러움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