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시험 5건 적발·토익·텝스까지 번져…고용부 시행규칙 개정 추진
AI 카메라가 탑재된 스마트안경 'AI 글라스'가 불법 촬영과 시험 부정행위에 잇따라 악용되면서 정부가 관련 규제 마련에 나섰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AI 글라스 출하량은 870만 대로 전년 대비 322% 증가했다. 메타는 이 가운데 740만 대를 출하해 85.2%의 점유율로 시장을 주도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도 메타는 디스플레이 미탑재형 AI 글래스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94%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상반기 글로벌 출하량은 263% 급증했다.
국내에서는 메타가 에실로룩소티카와 함께 AI 글라스 '레이밴 메타'와 '오클리 메타'를 5월 25일 국내 공식 출시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도 일부 대리점과 온라인몰을 통해 판매 중이다. 삼성전자도 구글·퀄컴과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AI 글라스를 올해 안에 내놓을 전망이다.
유통망이 확대되면서 범죄 악용 사례도 잇따랐다. 지난 7월 상대방 동의 없이 성관계 장면을 AI 글라스로 촬영한 남성이 경찰에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항공기 안에서 한 남성 승객이 스마트안경으로 승무원의 특정 신체 부위를 몰래 찍는 일도 있었다. 하이브 소속 걸그룹 아일릿의 매니저가 공항에서 팬을 식별할 목적으로 레이밴 메타를 착용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험장 부정행위도 잇따랐다. 4월 서울대가 주관한 텝스(TEPS) 시험에서 생성형 AI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안경을 착용한 20대 수험생이 적발됐다. 감독관이 시험 도중 안경을 여러 차례 만지는 행동을 수상히 여겨 확인한 결과다. 텝스관리위원회는 현행 부정행위 기준에 스마트안경이 명시돼 있지 않아 유사 항목인 '전자·통신기기를 이용해 답을 주고받는 행위'를 적용해 4년간 응시 제한 조치를 내렸다.
2026년 5월 두 차례의 정기 토익 시험에서 각각 한 명씩 AI 글라스를 착용한 응시자가 적발됐다. 한국토익위원회에 따르면 5월 10일과 31일 각각 치러진 토익 정기시험에서 AI 안경을 쓰고 부정행위를 한 응시자가 1명씩 적발됐으며, 이들은 부정행위로 처리돼 4년간 토익 응시 자격이 제한된다. 6월에도 1명이 추가로 적발됐다. 지난해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도 스마트안경을 이용한 부정행위자 3명이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가기술자격 시험에서도 5~6월 소방설비기사·정보처리기사·전기산업기사·가스기능사 등 시험에서 AI 글라스 관련 무효·부정행위 처리 사례가 총 5건 나왔다. 이 중 소방설비기사 시험에서 적발된 40대 수험생은 국가기술자격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돼 국내 최초로 사법처리를 받게 됐다.
해외에서도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영국에서는 AI 글라스로 몰래 찍은 여성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4만 회 넘는 조회수를 얻은 남성이 영상 삭제를 대가로 피해 여성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미국과 호주에서도 여성들의 얼굴과 연락처를 AI 글라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송출해 전화·메시지 폭탄 피해가 발생했다.
각국은 대응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시험장에서 AI 글라스를 소지·사용하면 부정행위로 처리하도록 국가기술자격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 시행규칙은 휴대전화·디지털카메라 등에 대해서만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스마트안경은 규제 공백 상태다.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에 AI 글라스를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에 포함하는 공문을 보냈다. 수능에서 AI 글라스로 부정행위를 할 경우 최소 2년간 응시 자격을 박탈하는 강도 높은 제재 방안도 검토 중이다.
카메라 탑재 제품이 확산하면서 사생활 침해 우려도 커지고 있으며, 동의 없는 촬영과 괴롭힘 사례가 알려지자 일부 국가에서는 스마트글래스의 촬영·사용 방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독일 한 시민단체는 AI 글라스로 인해 불법 촬영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며 제조사와 유통사를 형사 고발했다.
호주 매쿼리대학교 사이버보안허브 책임자인 달리 카파르 교수는 "AI 글라스는 마치 스토커를 얼굴에 쓰고 있는 것과 같다"며 "정부 차원에서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파르 교수는 "촬영 표시등은 허술한 안전장치일 뿐"이라며 더 강력한 안전장치를 기본 기능으로 탑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타는 최근 촬영 표시등을 물리적으로 훼손·변조한 수천 대의 AI 글라스를 확인한 뒤 해당 기기들의 카메라 기능을 영구 비활성화 조치했다. 메타는 카메라를 제거하고 음성 기능과 AI 성능에 초점을 맞춘 오디오 글래스 '레이밴 메타 오디오'를 공개했으며, 카메라가 사라지면서 무게는 43g으로 역대 메타 AI 안경 가운데 가장 가벼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