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연극리뷰] "악착같이 견뎌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해" 세종 M씨어터로 돌아온 정의신표 연극 〈스미레 미용실〉, 짠하면서도 웃게 만드는 180분.

입력 2026-09-25 1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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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스미레 미용실.
스미레 미용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1960년대 일본 큐슈의 탄광촌 아리랑고개에서 살아가는 재일교포 1세대 홍길(전무송 분)이네 가족의 삶을 다루고 있는 정의신 작·연출의 〈스미레 미용실〉(번역, 박현숙, 세종M시어터)의 이야기다.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공연시간만 180분을 달리는데도 1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정의신 연출 특유의 중독성이 있는 작품이다. 시각적 원근감의 미장센과 템포와 리듬, 흩어져 있는 무대 공간 하나에도 섬세한 설정을 하는 구도 사이에서 발현되는 비극성. 그 사이로 웃음을 드러내는 재일조선인들의 인생 정서에는 가난과 차별,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방인의 삶이 깔려 있다. 삶을 바라보는 내내 아프면서도 웃음의 타이밍을 웹툰처럼 툭 밀어 넣는 능청스러움과 진지함, 몰입된 감정의 환영을 깨고 연극임을 알리고 가는 정의신표 거리두기의 전환적 극 중 장면들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는 작품이다.

정의신 연출은 극이 끝날 때까지 뇌의 이미지로 돌아가는 수만 프레임을 통째로 암기하고 있다고 할까. 마치 정의신의 연극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배우의 동선과 시선, 등·퇴장의 타이밍, 손짓과 움직임, 배우들의 몸동작 위치와 각도까지 정교하게 계산해 메이드 정의신 극으로 작동되는 느낌이다. 대체로 정의신 작품에는 특정 국적의 이름표를 부착할 수 없는 재일조선인들의 인생들을 다루어 왔다. 특히 <스미레 미용실>에 주된 공간 배경이 되는 이발소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정도가 있다. 연극은 1963년 11월 9일에 실제로 일어난 미쓰이 미이케(三井三池) 탄광 폭발 사고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당시 갱내에는 약 1,400명의 노동자가 있었고, 458명이 사망했다. 이 가운데 폭발로 20명이 사망했고, 438명은 폭발 뒤 발생한 일산화탄소(CO)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한 839명이 일산화탄소 중독 피해를 입었다. 일본 최악의 탄광 사고로 기록되고 있는데 조선인 사망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스미레 미용실.
스미레 미용실.

◇탄광촌 아리랑고개, 사지가 뒤틀려도 살아야 해

〈스미레 미용실〉은 일본 사회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온전한 삶을 이루는 극 중 인물들이 부재하다. 인간에 대한 차별로 인해 몸과 마음에는 상처가 깊숙이 파인 전쟁과 일제강점기 시대의 역사적 인생들이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아픔, 고단한 세월을 치유할 수 없는 사랑, 이들을 견디게 한 것은 조선인임을 잊지 않아야 하는 가족애와 아리랑 정신을 감각시킨다고 할까. 연극은 아리랑고개 작은 탄광촌이 폭발 사고 이후 폐광될 때까지의 시간을 노년이 된 큰 대길(홍원기 분)이 그 시절 가족들과 살았던 시간의 기억으로 다루고 있다. 1965년부터 1969년 폐광되고 어린 대길이 오사카로 떠난 시점까지이다.

노년이 된 뒤 기억이 재생되는 시간은 한 50여 년이 흐른 뒤 현재쯤 된다. 함석지붕에서부터 대길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되는 무대 중앙에는 낡은 함석 목조 가옥과 광부가 드나드는 이발소가 자리하고, 이발소 앞 붉은 이발 의자와 회전 간판, 낡은 이발 도구 장식장과 오래된 타일 세면대와 평상 같은 생활 소품들이 놓여 있다. 오른쪽으로는 판잣집과 골목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두고 함석통과 펌프, 나무상자, 낡은 자전거와 생활 도구들을 배치해 탄광촌 사람들의 삶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운반용 60년대 삼륜 자동차도 등장한다. 검게 그을린 듯한 목조 벽과 낡은 판자, 함석과 목재의 질감은 탄광촌 시간을 그대로 끌어들이고, 집과 이발소, 골목이 하나의 무대 안에서 연결되면서 아리랑고개 전체가 하나의 조선인 공동체처럼 공간화되고 연결된다.

스미레 미용실.
스미레 미용실.

◇재일조선인 1세대 홍길이네 2막 7장 가족사

2막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막은 4장까지이고 2막은 5장부터 7장까지다. 아리랑고개 탄광촌에서 살아가는 홍길이네 가족들의 삶을 중심으로 탄광 폭발 사고 이전과 그 이후 폐광될 때까지의 시간이다. 홍길의 세 딸 중 큰딸 하츠미(전국향 분)와 어린 아들 작은 대길이, 하츠미의 남편이자 노동조합 위원장인 오무라(신현종 분), 이발소를 운영하는 둘째 딸 수미(최지연 분)와 차별로 인해 일본 국적으로 바꾼 남편 나루히로(서동갑 분), 셋째 딸 하루미(송영주 분)와 남편 소헤이(김문식 분), 그리고 탄광촌에서 일하다 낙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저는 히데히로(김동원 분)는 수미를 사랑하면서도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북송(北送)을 하게 된다.

1막 1장부터 4장까지는 1965년 여름 아리랑고개의 탄광촌 가족들의 일상에서 출발해 탄광 사고로 인한 CO(일산화탄소) 중독 후유증으로 나루히로는 기억과 언어능력이 떨어지고 두통, 발작과 경련, 성격 변화와 폭력적인 행동까지 나타나고 결국 사지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신체기능까지 상실해 간다. 2년 뒤 피해 광부와 가족들의 무너진 삶과 투쟁으로 이어진다. 2막 5장부터 7장까지는 CO 중독 후유증과 산재보상, 북송과 국적 문제, 하루미의 남편도 결국 후유증으로 인해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데 충격적이다. 폐광 이후 수미와 남편 나루히로만 탄광촌 이발소에 남고, 오사카로 떠난 뒤 수미는 포마드 냄새가 나는 이발소가 아니라 향수처럼 좋은 냄새가 나는 자기만의 〈스미레 미용실〉을 열고 싶어 하고 무대는 어김없이 정의신표 눈발이 날린다.

정의신 연극에는 특징적인 장면들도 여럿 된다. 수미와 남편 나루히로, 동생 히데히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복선화시킨 것도 극을 틈틈이 이어 붙이는 작가적 설정들이다.일산화탄소에 중독된 뒤 남성의 기능을 점차 상실해 가는 나루히로가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적인 욕망을 표현하는 수미와의 관계 장면과 자위행위는 몸이 무너지고 사랑의 방식마저 달라져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드러낸다. 북송으로 떠나기 전 히데히로가 아내 수미를 사랑하는 것을 안, 국적을 바꾼 나루히로와 서로 뒤엉켜 싸우는 장면에서 형을 향해 "형도, 병신이잖아"라고 내뱉는 대사 한마디는 여전히 일본 사회의 변방에서 조선인으로 소외되어 살아온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이들의 집단적인 아리랑 춤은 차별과 상처를 몸에 안고도 서로 기대고 견디며 살아야 했던 아리랑고개 사람들의 삶이다. 우리 몸짓으로 전경화시키면서 정의신 연출이 〈스미레 미용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견뎌내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아프다.

스미레 미용실.
스미레 미용실.

◇무대에서 1초도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 정의신 연출의 계산법

정의신 연출의 공간 계산법과 타이밍 사이가 벌어질 만도 한데 그 틈을 배우들의 에너지를 감정으로 전환해 현재 시간으로 살아가는 극중인물들로 산소공급을 제대로 하니 무대는 극이 끝날 때까지 숨 쉬고 살아있다. 차별을 견디며 이를 악물고 견디며 살아가는 홍길이네 가족들 캐릭터에서 따끔거리고 생동하는 재일조선인들의 정서가 차곡차곡 쌓여 가는 극의 전경 속에 극중 인물로 분한 배우들의 연기가 무대에서 감정 전환의 폭탄물로 작동될 수 있도록 서서히 좁혀오는 정의신표 연극을 섭렵한 관객이라면 이어지는 장면들이 때로는 유추될 때도 있겠지만, 상상의 계산을 깨고 의외성으로 밀어 넣는 비극성의 타이밍은 영화 편집처럼 정교해 가슴을 애잔하게 한 방 훅하고 후벼 파고 끝내 안경을 내리게 만드는 연출적 테크닉은 정의신 연극을 기대하게 만든다고 할까. 그래서 정의신 연극은 중독성이 있다. 특히 이번 〈스미레 미용실〉 공연은 2012년 일본 신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재일교포 배우들과의 협업 무대가 아닌 한국 배우들만으로 캐스팅했다. '과함'을 덜어냈는데도 오히려 재일조선인들의 삶의 정서가 극의 전류로 따박따박 타이밍마다 신호를 보내니 관객 가슴은 짠해지고, 웃으면서도 가슴을 툭 툭 쳐댄다.

스미레 미용실.
스미레 미용실.

◇배우들의 캐릭터로 정의신표 집을 채우는 180분

배우들의 연기도 〈스미레 미용실〉의 정의신표 연극성을 견고하게 하고 60년대 일본 사회 재일조선인 삶의 집을 만들어 내는 동력이다. 1세대 재일조선인 탄광촌 광부로 귀가 잘 안 들릴 정도로 노쇠해진 홍길 역의 전무송은 적은 대사 분량에도 평상에 누워 있는 것만으로 무게감을 주고, 큰딸 하츠미가 떡을 찧을 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나도 좀 줘"라고 할 때와 "아버지는 귀가 안 들려서 괜찮아"라고 하자 "잘 들려"라고 대사를 받는 타이밍에 웃음이 터진다. 실제 부부에서 〈스미레 미용실〉에서는 재혼한 부부로 등장하는 큰딸 하츠미(전국향 분)와 오무라 위원장(신현종 분)의 케미도 일상 못지않은 부부애를 보여준다. "하츠미, 하츠미" 하며 사랑의 신호를 보내는 오무라가 가족들이나 탄광촌 사람들이 힘들 때마다 특유의 제스처로 "힘내자고, 힘!"이라고 말하는 긍정의 방식은 결국 "그 어떤 차별과 위기에도 견뎌서 살아 있어야" 하는 재일조선인들의 삶의 은유이고 이 작품의 방향이다.

막걸리를 팔아 작은 대길을 억척스럽게 키우며 살아가는 하츠미는 노년의 아버지를 살뜰히 챙기는 조선인 큰딸의 피가 흐르는 정서와 견디고 참아내는 아픔을 보여주고, 수미(최지연 분)는 남편의 사고로 집을 떠나는 하루미에게 있는 돈 없는 돈 챙겨주면서도 "언제든지 와. 여기는 너의 집이니까"라고 말한다. 견디며 꿋꿋하게 재일조선인의 딸로 살아가면서 '스미레 미용실'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조선인 여인의 당참을 정의신 극중 인물로 살려낸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뒤 신체기능이 하나둘 무너져가는 나루히로(서동갑 분)와 소헤이(김문식 분)의 연기도 좋지만, 특히 나루히로가 두통으로 견딜 수 없다며 바닥에 머리를 찧는 장면은 CO 중독 후유증의 고통을 섬뜩할 정도로 감각시킨다. 점차 언어를 상실해 가는 쇼헤이(김문식 분)의 말이 비틀어지고 끊기는 유창성 장애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여성성으로 캐릭터화한 이승우도 재주가 많은 배우다.

화자로 등장하는 큰 대길(홍원기)의 등장도 과거와 현재의 극 중 장면들의 변화를 흔들림이 없이 이어주는 것도 작품을 집중하게 하는 노련한 연기를 보여준다. 큰 대길은 1960년대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오사카로 가 하나둘 가족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버블경제를 거치면서도 패션디자이너로 자유인이 될 수 없었던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역사적 증언자의 시선을 덤덤히 표현한다. 사랑과 일본 사회에서 살아갈 삶의 꿈을 포기하고 결국 북송선을 탈 수밖에 없었던 히데히로(김동원 분)는 당시 일본인도, 조선인도 될 수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탄광촌 사람들인 키노시타 송석근, 와카마츠 김지훈 등이 <스미레미용실>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캐릭터를 살려내는 정의신 연출의 오차 없는 계산과 타이밍 아니겠는가. 180분을 정의신과 한국 배우들의 생동과 절제의 에너지로 꽉 채우는 연극이 정의신표 <스미레미용실>이다.

전작들과 스타일이 비슷하고 정의신 연출구도에 짜맞춘듯하지만 정의신연극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에 전작 작품들과는 극의 맛이 다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대 배경이 객석공간과 거리가 가까워 전경의 폭이 작게 느껴진다. 2층이나 1층 뒤쪽을 추천한다. 10월3일까지 세종 M시어터에서 공연된다. 추천하는 공연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