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발행어음 진출…연 5.5% 특판 앞세워
시장 8파전에 메리츠證 인가 임박…금리 경쟁 격화
WM 기반에 '삼성' 브랜드 신뢰까지…차별화 승부
삼성증권이 9년 만에 발행어음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 등 선발주자가 선점한 시장에 후발로 합류했지만 압도적인 자산관리(WM) 기반과 '삼성'이라는 그룹 브랜드를 앞세워 존재감을 키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지난 21일 발행어음 1호 상품을 출시하고 판매에 들어갔다.
초기 시장 공략을 위해 업계 최고 수준인 연 5.5%(세전) 초단기 특판을 앞세웠다. 9월 이후 신규 고객 등을 대상으로 2~90일물에 연 5.5%를 1인당 100만원 한도로 제공하고, 종합계좌 보유 고객에게는 1년물 연 4.3%를 준다. 특판 마감 이후 일반 발행어음 금리는 적립형 연 4.6%, 1년물 연 3.95% 등이다.
지난 9일 금융위원회로부터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지 열흘여 만의 속도전이다. 삼성증권은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미래에셋증권·키움증권·하나증권·신한투자증권에 이어 8번째 발행어음 사업자가 됐다. 2017년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요건을 갖춰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지정된 지 9년 만이다. 당시 대주주 관련 사법절차와 이듬해 배당사고로 인가 신청을 철회했고, 지난해 재신청 이후에도 거점점포 검사에 따른 제재로 심사가 한 차례 중단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IB로 지정된 증권사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단기 금융상품이다. 인가 사업자는 자기자본의 200%까지 발행할 수 있어 개별 기준 자기자본이 8조원을 넘는 삼성증권은 최대 16조원가량을 끌어모을 수 있다.
삼성증권의 참전으로 발행어음 시장은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발행어음 잔액은 7개 증권사 55조9291억원으로, 사업자가 4곳뿐이던 1년 전(44조3912억원)보다 25.9% 늘었다. 여기에 삼성증권의 조달 한도까지 더해지면 시장 규모는 하반기 6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아직은 한국투자증권이 22조원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미래에셋증권·KB증권(각 11조원), NH투자증권(9조원)이 뒤를 잇는 등 상위 4개사가 전체의 94%를 차지하는 과점 구도다.
경쟁은 갈수록 격화하는 양상이다. 시장금리 상승과 은행권으로의 자금 이동이 겹치면서 증권사들은 고객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특판 금리를 잇달아 올리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6개월물 연 4.5% 특판을 내놓아 당일 판매 5시간 만에 완판됐고, 키움증권은 1년 만기 연 5.0%, 한국투자증권도 1년 만기 연 4.9% 특판 상품을 출시했다.
여기에 메리츠증권까지 인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메리츠증권의 발행어음 인가안은 지난 16일 증권선물위원회를 통과해 이르면 23일 금융위 의결을 앞두고 있다. 인가 시 사업자는 9곳으로 늘어나면 시장 내 고객자금 확보 경쟁과 금리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 프리미엄'이 승부처…WM 기반·브랜드 신뢰
이런 국면에서 삼성증권의 차별화 포인트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삼성'이라는 브랜드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기 신용을 기반으로 발행하는 상품으로, 은행 예금과 달리 예금자보호 대상은 아니다. 투자자는 금리뿐 아니라 발행 주체의 신용도를 함께 따질 수밖에 없다. 같은 금리 조건이라도 누가 발행했느냐에 따라 자금 유입 속도가 달라지는 이유다.
삼성증권의 경쟁력으로는 단순한 증권사 신용을 넘어 그룹 브랜드가 주는 신뢰가 꼽힌다. 발행어음은 발행사의 신용에 기반한 상품이지만 시장에서는 삼성 계열 전반에 대한 신뢰가 투자자 인식에 반영되며 초기 자금 유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용등급만 보면 은행이나 금융지주 계열이 더 높을 수 있지만 안정성을 중시하는 개인 투자자일수록 발행 주체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만큼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에 더해 삼성증권이 내세우는 실질적 강점은 압도적인 WM 기반이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리테일 고객자산은 652조원, 1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는 57만명을 웃돈다. 1000억원 이상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패밀리오피스 고객도 193가문, 관리자산 51조원 규모다.
발행어음이 단순 금리 상품이 아니라 자산관리 포트폴리오 안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고객 기반은 초기 수신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제공한다. 검증된 IB 역량과 운용처 확보, 선발주자들이 다져놓은 상품 구조와 리스크 관리 노하우를 분석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후발주자의 이점으로 거론된다.
다만 과제도 뚜렷하다. 시장금리가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사업자 간 금리 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높은 금리로 끌어온 자금을 웃도는 수익을 낼 운용처를 확보하는 일이 수익성의 관건으로 꼽힌다. 조달은 곧 비용인 만큼 여기에 상응하는 자산을 찾지 못하면 외형을 키울수록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문제는 담을 자산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발행어음은 운용자산의 50% 이상을 기업금융 관련 자산으로 유지해야 하고, 부동산 관련 운용 한도는 올해 15%에서 내년 10%로 줄어든다. 모험자본 공급 의무도 조달액의 10%에서 내년 20%, 2028년 25%로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규제 요건을 충족하면서 수익성과 건전성까지 갖춘 적격 투자처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삼성증권은 이런 부담을 감안해 외형 경쟁보다 안정성을 앞세운 전략을 택했다. 사업 초기부터 수신 규모를 빠르게 키우기보다 발행 규모를 단계적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후발주자로서 실제 운용 가능한 우량자산과 모험자본 투자 여력,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발행 규모를 단계적으로 관리하겠다"며 "외형 경쟁보다 사업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우선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운용자산은 기업금융을 중심으로 수익성과 건전성, 회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선별하고 기업대출·인수금융·회사채 등 안정적 현금흐름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을 기본 포트폴리오로 삼겠다"며 "조달 만기가 운용자산보다 짧을 수 있는 만큼 현금성 자산과 신속하게 유동화할 수 있는 우량자산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유동성에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발행어음은 삼성증권의 종합투자계좌(IMA) 사업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2분기 별도 기준 자기자본이 8조원을 넘어 IMA 인가 요건을 충족한 만큼 발행어음에 이어 사업 영역을 넓혀 WM 고객에게 제공할 상품 라인업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도 발행어음 진출을 삼성증권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고액자산가 중심의 WM 경쟁력에 신규 사업이 더해지며 중장기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다.
김성훈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고액자산가 중심의 견조한 WM 사업 성장세와 함께 발행어음, 외국인 통합계좌 등 추가 성장 동력이 붙으면서 중장기 펀더멘털 개선이 이어질 것"이라며 "리테일 채널 경쟁력을 바탕으로 발행어음 잔고의 조기 안착과 운용자산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