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윤영민]세종이 공법(貢法) 앞두고 17만명에게 물은 이유?

입력 2026-09-21 15: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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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2부 윤영민 기자
사회2부 윤영민 기자

1430년 세종은 새로운 농지 세금제도인 공법(貢法)을 앞두고 백성에게 먼저 물었다. 고관부터 농민까지 약 17만명이 조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찬성은 57%, 반대는 43%로 팽팽했다.

지역별 반응은 더 극명했다. 토지 생산력이 높은 경상·전라도에서는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척박한 함길·평안도에서는 반대가 우세했다. 같은 농지 제도라도 지역의 토질과 생산 여건에 따라 받아들이는 모습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세종은 찬성이 더 많다는 이유로 곧바로 전국에 밀어붙이지 않았다. 이후 여러 차례 논의와 보완을 거쳐 1444년에야 공법의 틀을 확정했다. 토지의 비옥도를 6등급, 그해 풍흉을 9등급으로 나눈 것도 지역과 농사 형편의 차이를 제도에 담기 위해서였다.

600년 가까이 지나 다시 전국 농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농지 투기를 막고 소유와 이용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전국 농지 전수조사에 나섰다. 올해 기본조사에서는 1996년 이후 취득 농지 136만㏊ 가운데 97%를 조사했고, 27%가 불법 임대차·무단 휴경 등의 위반 의심 농지로 분류됐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은 필요하다. 농사를 짓겠다며 땅을 산 뒤 불법으로 임대하거나 실제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직불금을 받았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보유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취재 현장에서 만난 농촌은 법 조문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고령으로 농사를 포기하고 이웃에게 논을 맡긴 노인도 있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몇 마지기 논을 고향 농민에게 맡긴 출향인도 있었다. 문중 땅에서 수십 년째 농사를 짓는 농민도 있었다.

한 출향인은 최근 상속받은 논을 팔았다. 모내기철이나 벼가 익을 때면 아들에게 할아버지와 아빠가 농사짓던 땅이라고 보여주려고 고향을 찾던 곳이었다. 그는 "논을 팔고 나니 이제 고향에 갈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농지를 빌려 생업을 이어온 사람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지주가 임대를 중단하거나 땅을 팔면 기존 임차농은 경작지를 잃을 수 있다. 반대로 수익성이 낮고 진입이 어려운 농지는 새로운 주인이나 경작자를 찾지 못해 휴경지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도 이런 농촌 현실을 전혀 외면한 것은 아니다. 기본조사 과정에서 중앙·지방정부 실무협의회를 14차례 열었고, 투기성 위반은 엄정하게 조사하되 고령농의 불가피한 휴경 등 일반적인 위반은 계도와 대안조치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도 투기와 농촌의 일반적 위반을 구분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1000만 필지가 넘는 농지를 들여다보고 확인한 고령농과 상속농, 임차농, 한계농지의 현실을 정책에 담아내야 한다. 적발이 목적이 아닌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기초자료가 돼야 한다.

세종의 공법도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다. 시행 뒤에도 백성의 부담과 지역별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됐다. 이에 조정에서는 다시 보완책을 논의했다. 백성을 법에 맞추기보다 법을 백성의 삶에 맞추려 했던 것이다.

정책과 법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출향인의 발길이 끊기고 실경작자가 경작지를 잃어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 무슨 의미가 남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농촌(農村)에 농부와 농사가 무(無)너져 무촌(無村)을 만드는 역사가 기록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