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고배 경북대… '인적 쇄신' 넘어 시스템 쇄신할까

입력 2026-09-13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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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 직선·간선 오갔지만 후보 난립·학내 갈등 되풀이
"후보 압축해 충분한 검증을"…총장 선출방식 개선론도
교수 승진안 갈등에 소통·의사결정 구조까지 쇄신 요구 확산
교수회 "인적 쇄신 넘어 상시 전략체계·비상혁신계획 마련해야"

경북대학교 본관 전경.
경북대학교 본관 전경.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에서 탈락한 경북대학교가 쇄신의 기로에 섰다.

부산대와 전남대, 충남대가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게 된 반면 경북대는 최종 3곳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선정 대학에는 올해 대학당 약 700억원이 지원되는 만큼 이번 탈락이 향후 대학 간 경쟁력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탈락 직후 책임론도 거세졌다. 경북대 교수회는 대학본부에 사업 준비·기획·의사결정·평가 대응 전 과정과 책임 소재를 공개하고 인적·조직 쇄신과 전문적인 국책사업 대응체계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대학 내부에서는 이번 실패를 현 대학본부나 허영우 총장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총장 선거의 후보 난립과 교수사회의 파편화, 구성원과의 소통 부족, 대형 국책사업을 지속적으로 기획·관리할 전문조직 부재 등 대학 운영 시스템 전반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36년 이어진 총장 선거…후보 난립은 여전

경북대는 1990년 제12대 김익동 총장을 교수 직선제로 처음 선출했다. 그러나 직선제가 이어지면서 후보 난립과 교수사회 분열이라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1998년 제14대 총장 선거 당시에는 박찬석 총장을 포함해 11명이 후보로 거론됐고 일부 예비후보들은 10~15명 규모의 참모조직까지 꾸려 선거운동을 벌였다.

경북대는 결국 2012년 직선제를 폐지했지만 간선제 역시 해법이 되지 못했다. 2014년 첫 간선제 선거에도 10여 명이 출마했고 소수의 총장임용추천위원이 당락을 결정하면서 이른바 '로또 총장' 논란이 일었다.

2020년 다시 직선제로 돌아왔지만 후보 난립은 계속됐다. 2020년과 2024년 선거 모두 9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특히 2024년 선거에서는 이형철 후보가 1차 투표에서 환산득표율 16.84%로 1위, 허영우 후보가 13.37%로 2위를 차지했지만 결선에서 허 후보가 45.61%를 얻어 순위를 뒤집었다. 현행 규정에 따른 정당한 선거 결과이지만 다수 후보가 출마하는 구조가 충분한 후보 검증과 당선 이후 리더십 확보에 적합한지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경북대 교수는 "후보가 9~10명씩 나오면 토론회에서도 각 후보의 정책과 자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본선에 앞서 예비투표 등을 통해 후보를 5명 안팎으로 압축해 충분히 검증한 뒤 선거를 치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선거제도만의 문제 아냐"…파편화된 대학사회

다만 총장 선거제도만 손본다고 대학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진단도 나온다.

과거 경북대 총장 선거에 출마했던 이정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학문 분야와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세분화되면서 특정 후보가 폭넓은 지지를 얻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교수와 교직원, 학생 모두 학교 전체의 문제보다 자신과 직접 관련된 현안에 반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학이 당면한 문제가 총장 선거제도를 바꾼다고 해결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교수들도 대학 전체를 발전시킬 사람보다 자신과 관계가 있거나 자신의 연구에 편한 사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에 요구되는 역할은 크게 늘었다. 교육과 연구뿐 아니라 지역 산업 육성, 기업 협력, 대형 국책사업 수행까지 대학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 넓어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문 인력과 행정 역량은 충분히 확충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15일 오전 8시 30분쯤 경북대학교 본관 앞에서 조교수들이 대학 본부의 교원 승진 및 재임용 기준 강화안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기존 개정안의 철회 여부를 명확히 밝히고, 보다 투명한 논의 과정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윤정훈 기자
지난 6월 15일 오전 8시 30분쯤 경북대학교 본관 앞에서 조교수들이 대학 본부의 교원 승진 및 재임용 기준 강화안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기존 개정안의 철회 여부를 명확히 밝히고, 보다 투명한 논의 과정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윤정훈 기자

◆교수 승진안 갈등까지…의사결정 구조 도마

최근 교수 승진·재임용 기준 개편을 둘러싼 갈등도 이 같은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허 총장 취임 이후 대학본부는 연구 경쟁력 강화를 내걸고 승진·재임용 기준 강화를 추진했지만 교수사회가 강하게 반발했다. 대학본부는 이후 단과대학 의견을 받아 일부 기준을 완화했지만 '교원 승진 및 재임용 지표 개선안 대응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여전히 충분한 숙의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성구 경북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본부에서는 단과대학 의견을 반영했다고 하지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해당 부분만 예외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손질하고 있다"며 "학문 분야별 특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여러 의견을 조율해 완성도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특히 허 총장이 '서울대 10개 만들기' 탈락 이후 소통 과정 개선과 인적 쇄신을 약속한 만큼 정책 추진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쇄신을 이야기한다면 승진·재임용 기준처럼 구성원 이해관계가 큰 정책부터 충분한 의견 수렴과 숙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홍성구
홍성구 '교원 승진 및 재임용 지표 개선안 대응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경북대 역사교육과 교수)

◆교수회 "실패 원인 공개하고 전문 전략체계 만들어야"

'서울대 10개 만들기' 탈락 이후 교수회 역시 외부 요인보다 대학 내부의 준비 과정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교수회는 지난 7일 내부 성명을 통해 "왜 이러한 결과에 이르게 됐는지, 대학의 정책 결정과 사업 준비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과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요 정부 재정지원사업의 미선정 원인과 평가 결과를 분석해 사업 준비·기획·의사결정·평가 대응 과정과 책임 소재를 구성원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단순한 인적 쇄신을 넘어 구조적인 변화도 주문했다. 대학의 미래 전략과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상시적으로 기획·관리할 전문 전략체계를 구축하고, 교수와 구성원이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선정 대학들과 벌어질 재정 격차를 분석해 대체 재원과 교육·연구 예산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종합한 '경북대학교 비상혁신계획'과 구체적인 실행 일정·책임 주체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허 총장 역시 지난 4일 구성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업 기획과 전략, 학내 협업과 의사결정, 행정적 지원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필요한 인적 쇄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수회는 "지금 필요한 것은 결과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추상적인 쇄신의 약속이 아니다"며 "과거의 대학 운영과 의사결정 구조를 뼈아프게 되돌아보고,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구성원들에게 분명히 밝히는 책임 있는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적·조직 쇄신과 구성원 소통, 재정 확충, 연구·교육 경쟁력 강화를 포괄하는 '경북대학교 비상혁신계획'을 조속히 마련하고 구체적인 실행 일정과 책임 주체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