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발굴했던 경주 '석침총', 117년 만에 국립경주박물관이 재발굴

입력 2026-09-11 11:05:10 수정 2026-09-11 11:31:25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일제가 발굴 당시 확인하지 못한 무덤 구조·유물을 현대 고고학의 방법으로 새롭게 규명
광복 이후 축적된 국립박물관의 다양한 과학적 분석 방법 적용

1909년 석침총 발굴 당시 출토된 돌베개(석침).경주국립박물관 제공
1909년 석침총 발굴 당시 출토된 돌베개(석침).경주국립박물관 제공

1909년 일본 고고학자들이 조사해 '석침'(돌베개)가 출토됐던 경주 서악동 석침총(石枕塚)을 117년 만에 국립경주박물관이 다시 발굴한다.

이번 재발굴은 일제강점기 전후에 만들어진 조사 기록을 단순히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광복 이후 80여 년 동안 우리가 축적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과거 조사를 다시 검증하고 필요한 부분을 바로잡는 작업이다.

석침총은 '석침', 즉 돌베개가 발견된 무덤이다. 1909년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 등 일본인 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돌방과 주검 받침, 석침 등이 발견됐다.

하지만 당시의 조사 기술과 기록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정식 발굴보고서도 발간되지 않았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당시 작성된 일부 도면과 사진, 간단한 보고문 등이다.

20세기 초 일제 연구자들은 경주 등 한반도의 여러 유적을 조사했고, 이들 자료는 이후 한국 고고학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당시 조사는 방법과 기록이 충분하지 않았고 일제의 시각에서 조사하고 해석했던 한계가 있었다.

1909년 일본학자들이 석침총 발굴조사 당시 무덤 내부 모습.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1909년 일본학자들이 석침총 발굴조사 당시 무덤 내부 모습.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이번 조사에서는 전통적인 발굴뿐 아니라 광복 이후 크게 발전한 자연과학적 분석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돌방 바닥 토양과 돌방 벽에 발린 석회, 돌방을 만든 석재에 대한 과학적 분석 등을 통해 육안 관찰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무덤 축조와 사용 과정에 관한 정보를 확보할 계획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번 재발굴에서 기존 기록과 실제 유구를 대조해 1909년 일제 조사자가 확인하지 못했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흔적을 찾아낼 계획이다. 특히 돌방의 구조와 축조 방법, 매장시설의 성격을 다시 검토하고, 수습하지 못한 유물과 매장 흔적을 분석해 석침총이 언제, 누구를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본다.

또 1909년 조사 당시 출토된 출토 유물에 대해 도쿄대 협조를 받아 조사,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이 117년만에 다시 발굴하는 석침총을 포함한 주변 일대 모습.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국립경주박물관이 117년만에 다시 발굴하는 석침총을 포함한 주변 일대 모습.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석침총이 위치한 서악동 고분군은 신라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한 대형 고분들이 집중된 곳으로, 이번 재발굴 조사를 통해 신라가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돌방무덤으로 장례방식을 변화시킨 과정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대환 학예연구관은 "석침총 재발굴은 1909년 조사를 단순히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조사성과와 한계를 넘어 광복 이후 80여년 동안 우리가 추적한 신라 고고학 연구 성과와 과학적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직접 확인하고 검증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제강점기의 신라 고분 연구를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고, 서악동 고분군과 신라 돌방무덤 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오는 17일 개토재를 열고 100일간의 본격조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