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무튼, 후드티
조경숙 지음/ 코난북스 펴냄
나는 모자 달린 옷이라면 껌뻑 죽는다. 다만 모자와 옷이 하나로 된 일체형만 좋아한다. 탈부착 방식은 안 된다. 후드티를 좋아하게 된 건 언젠가 보았던 중세 수도사들의 옷이 시작이었다. '그레고리안 성가' 앨범 재킷도,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숀 코너리와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프란치스코 수도회 복장도 한몫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건 후드티가 아니라 모자 달린 모든 옷이었다.
여기, 후드티 열일곱 벌 가진 여자가 있다. 옷장 속 그녀의 옷 서른한 벌 중 54%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IT회사 개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정장과 스커트와 원피스를 요구하지 않는 집단에서 주로 일해 왔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시민사회활동가이고 만화평론가인 조경숙의 후드티 연대기 '아무튼, 후드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T: 내가 사랑한 티셔츠'가 자신과 함께한 티셔츠에 관한 헌사 혹은 비망록에 가깝다면 '아무튼, 후드티'는 한 사람(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겪은 편견과 불평등의 '사회생활 보고서'이다. 책은 후드티를 입게 된 배경과 후드티를 선호하고 집착하게 만든 환경과 옷 하나로 이어진 삶의 궤적을 차근차근 복기한다.
친오빠에게서 물려 입은 첫 후드티. 하얀 날개가 인쇄된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청년 모임에 나갈 때만 해도 그의 삶이 후드티와 밀접하게 연결될 줄은 몰랐을 터. 저자에게 후드티는 전투복이면서 신분증이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실용 아이템이고 숨어 지내기 좋은 도피처가 된다.
"후드티를 입는 것 자체보다 후드티의 후드를 뒤집어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후드를 쓰면 게임할 때 모니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백배하여 결의를 다지게 하는 아이템이 후드티란 얘기다.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업체 직원이 복장에서부터(정규직은 비즈니스 캐주얼, 하청업체는 후드티) 차이가 나는 조직. 이를테면 후드티가 신분증이 되는 현장에서 근무하며 문제의식은커녕 스스로 차별의 주체가 된 경험을 반성하는 장면은 이 책의 백미다.
"상류층 기업인이 후드티를 입었을 때 그는 자유와 혁신을 담보한 뉴엘리트로 구분된다. 후드티를 입은 노동자는 더 낮은 계급으로 특정된다."
후드티를 누가 언제 입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는 걸 간파한다. 그리고는 덧붙이기를 "그때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별 짓고 싶었던 걸까. 그게 자신의 얼굴인지도 모르고." 이쯤 되면 후드티라는 간편하고 저렴한 옷 이야기를 넘어선 통찰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육아휴직 중 권고사직 당했을 때처럼 자존감이 바닥을 칠수록 후드티에 집착했던 시절을 소환하고는 단절과 소외의 마음을 품고 후드티를 입었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다시 돌아봐도 후드티를 입고 다닌 곳들과 만난 사람들이 선명하게 기억나 푸근한 마음이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내게 그 후드티들은 없어도 되는 옷들이 아니라 지금은 없지만 그때그때 나에게 특별했던 옷들이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없어도 되는 사람'이었던 적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몸에 딱 맞는 후드티 한 벌이면 충분한 사람 조경숙. 책의 마무리는 이렇다.
"그저 눈앞의 하루를 제멋대로 살아가는 게 다인 삶이지만, 쌓은 게 없는 대신 나는 듯이 뛸 수 있지 않겠는가."
(추신) 책을 읽은 후에 확인해 보니 현재 나는 후드티 한 벌 후드집업 한 벌 후드점퍼 두 벌 가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