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한윤조] 외국인도 반한 K세신

입력 2026-09-03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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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조 논설위원
한윤조 논설위원

어릴 때 주말이면 온 가족이 목욕 바구니를 들고 대중목욕탕(大衆沐浴湯)을 갔었다. 아빠와 동생은 남탕으로, 엄마와 나는 여탕으로 각자 찢어졌다가 목욕이 끝난 뒤 요구르트를 하나씩 손에 쥐고 다시 만나곤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중목욕탕의 추억으로 치부되던 '목욕'이, 가장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힐링 라이프스타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남대문 시장에 때를 미는 때 타월과 발 각질 제거기를 사기 위해 2030세대와 외국인들이 몰려들고, 특히 한국 여행의 첫 코스로 '1인 세신(洗身)숍'을 찾아 때를 밀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셜미디어 인증 글이 넘쳐난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최근 목욕 문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생소한 풍경은 오늘날 소비 트렌드의 일면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유쾌한 반전의 중심에는 일상의 평범한 경험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기록·공유하려는 젊은 층의 소비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젠지(Gen Z)와 밀레니얼 세대에게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 위생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시장의 아날로그적 정취 속에서 형형색색의 목욕용품을 직접 만져보고 상인과 담소를 나누며 물건을 사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젊은 층에게 특별한 '체험형 콘텐츠'다. 사우나나 세신을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씻어내는 과정 역시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힐링이자 자아 정화의 리추얼(Ritual)로 승화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목욕 문화의 재발견이 국경을 넘어 글로벌 관광 트렌드로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특유의 세신 문화는 타인에게 알몸을 노출하기 꺼리는 외국인들의 문화적 장벽과 부딪혀 그간 대중화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1인 세신숍'이라는 독립적이고 프라이빗한 공간이 결합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중탕의 낯선 시선은 차단하면서도, 오직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K-뷰티·웰니스 체험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목욕이라는 한국인의 일상이 힙(Hip)한 문화적 자산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것을 보니, 결국 오래된 일상재라도 어떠한 경험적 가치와 스토리텔링을 입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