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개 장독 사이 '보물단지'…대대로 내려온 씨간장 한 방울에 깊은 장맛
외할머니→어머니→딸, 3대째 이어진 장 담그기
햄프 된장 개발·대통령상 수상…"안동간고등어·안동소주처럼 안동 대표 장 만들 것"
경북도청 신도시에서 차로 20분 남짓 달렸다.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마애솔숲을 지나 낙동강을 건너 보경사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오래된 장독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개의 장독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이곳이 안동된장을 만드는 선지농산이다.
안동에서 난 콩과 맑은 물로 빚은 장이 3대에 걸쳐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장독대 앞에서 만난 박수희(56) 선지농산 대표는 주변 풍경부터 살펴보라고 했다.
"안동에서 가장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이곳까지 들어오게 됐어요. 바람이 좋고 소나무가 많아 장을 담그기 아주 좋은 곳입니다."
박 대표가 말하는 장맛의 비결은 거창한 시설이 아니었다. 볕과 바람, 그리고 기다림이었다.
그는 소나무에서 날리는 송진가루가 자연 방부제 역할을 해 장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터 역시 장을 익히는 데 좋은 조건이라고 했다.
300여 개의 장독을 둘러보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작은 장독 하나가 있었다. 다른 장독보다 작고 오래돼 보였다.
박 대표는 그 장독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우리 집 보물단지예요."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씨간장'이었다.
안동에서는 집안의 씨간장이나 씨된장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장맛의 뿌리이자 가문의 자부심으로 여긴다. 박 대표가 이날 조심스럽게 씨간장 독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 짙고 검은 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독 안쪽에는 간장이 차올랐다 빠져나간 흔적을 따라 하얀 소금기가 나이테처럼 남아 있었다. 오랜 세월이 고스란히 쌓인 듯했다.
"여기 한 방울 맛보세요."
검은 간장 한 방울을 맛봤다. 예상과 달리 짜지 않았다. 오랜 시간 숙성된 간장은 짠맛보다 깊고 묵직한 풍미와 은은한 향을 먼저 느끼게 했다.
박 대표는 이 씨간장이 외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외할머니에게 받은 씨간장이니 100년은 훨씬 넘었을 거예요. 우리 장맛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박 대표의 장맛은 외조모 김두레 여사에서 시작됐다. 영양 출신인 김 여사는 친정어머니에게 장 담그는 법을 배웠고, 이를 장녀인 박 대표의 어머니 배옥출(82) 여사에게 전수했다. 그리고 그 맛이 다시 박 대표에게 이어졌다.
박 대표가 어머니에게 장 만드는 법을 배운 것은 20년 전이다. 10년가량 어머니와 함께 장을 담근 그는 2016년부터 홀로 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된장에 머물지 않고 음식과 상차림, 케이터링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새로운 장을 만들기 위한 도전도 이어갔다. 심뇌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햄프를 활용한 된장 개발에 나섰고, 발효점을 찾기까지 4년이 걸렸다. 전국 식품박람회를 찾아다니며 안동 장맛을 알리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그 노력은 올해 결실을 맺었다. '2026 대한민국 국제요리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안동된장의 맛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박 대표가 바라는 것은 단순한 수상이 아니다. 그에게 장은 한 병의 간장이나 된장을 만들어 파는 일이 아니라 한 집안에서 시작된 맛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일이다.
박 대표는 "안동간고등어, 안동소주처럼 '안동'을 대표하는 이름의 된장을 만들고 싶다"며 "안동에서 장류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그 밑바탕을 만들어가는 것이 제 꿈이고 목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