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가 예뻐 한 번쯤 집어든 그 책… 200여 권의 얼굴을 만든 북디자이너 이다은

입력 2026-09-07 11: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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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OLO' 순자에서 은행나무출판서 디자이너 이다은으로
고3때 시집 출판…책에 대한 애정으로 북디자인까지
"가장 기억에남는 작업은 '월든'…500권 책 디자인이 목표"

이다은 은행나무출판사 북디자이너. 본인제공
이다은 은행나무출판사 북디자이너. 본인제공

'나는 SOLO' 순자로 이름을 알린 이다은. 방송 후 그의 이름을 검색해본 사람이라면 의외의 이력을 마주하게 된다. 10년 차 북디자이너인 그는 지금까지 200여 권의 책에 얼굴을 입혀왔다. 서점에서 표지가 예뻐 무심코 집어 들었던 책 가운데 그의 손길을 거친 책도 적지 않다. 현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표지 디자인부터 마케팅 비주얼, 도서전 부스까지 책의 시각적 작업 전반을 맡고 있다.

김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3 때 시집을 내고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던 '시인'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조부모님의 포도밭과 시골길, 느티나무 아래서 먹던 수박의 기억은 지금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감각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직접 책을 쓰기보다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히는 사람이 됐다. 이다은 디자이너가 말하는 책과 미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다은 은행나무출판사 북디자이너. 본인제공
이다은 은행나무출판사 북디자이너. 본인제공

-방송 출연 후 일상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방송 이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러워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과분한 관심과 애정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지내고 있다.

-고3 때 시집을 냈던 '학생 시인'에서 북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책과의 인연을 들려준다면.

▶고등학생 때 배창환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시 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문학 수업에서 시 쓰기 과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야간자율학습 시간마다 미리 시를 썼다. 수업 후 열 편 남짓의 시를 들고 선생님을 찾아갔고, 지도 아래 60여 편을 완성했다. 선생님들이 십시일반 제작비를 보태준 덕분에 시집 '생각하면 눈시울이'도 낼 수 있었다.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뒤에는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부딪혔다. 결국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창작 그 자체보다 '책'이라는 물성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텍스트의 이야기와 감정이 가장 빛나도록 알맞은 옷을 입혀주는 '조력자'의 역할에서 더 큰 보람을 찾게 됐다.

-책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디자인의 기준도 궁금하다.

▶책이 품은 고유한 맥락을 먼저 읽어내는 편이다. 문학 작품이라면 텍스트의 정서와 분위기를 세계문학전집 같은 시리즈물이라면 출판사의 브랜드 정체성과 방향성을 살핀다. 좋은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자아를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디자인은 저자와 출판사, 독자와 서점을 잇는 시각적 가교다. 맥락 없는 장식은 덜어내고 텍스트의 본질에 집중할 때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디자인이 완성된다고 본다.

월든 표지. 오른쪽부터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버전. 은행나무
월든 표지. 오른쪽부터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버전. 은행나무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는다면.

▶2021년 '월든' 50만 부 출간 기념 특별 한정판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 대형 서점의 특별판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19세기·20세기·21세기'라는 시간적 테마를 제안했다. 예스24는 19세기 초판의 질감과 금박, 형압을 살렸고, 교보문고는 1900년대 초반 표지의 오리지널 일러스트를 찾아 선 하나하나 직접 따서 복원했다. 알라딘은 21세기 모던 에디션으로 재해석해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랐다. 단순히 보기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 책의 가치를 입체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북디자인이라는 점을 깊이 실감한 작업이었다.

-북디자이너로서 느끼는 직업의 매력과 독자들을 직접 만난 경험은.

▶빠르게 소비되고 휘발되는 디지털 매체와 달리 책은 '물성'과 '영속성'을 지닌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인쇄된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완결성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한 장의 표지로 독자와 텍스트의 첫 만남을 주선하고, 그 책이 누군가의 서가에 수년, 수십 년 동안 남는다는 사실에 늘 벅찬 자부심을 느낀다.

매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TF 디자인 총괄로 부스 콘셉트 기획부터 공간 시공, 굿즈와 홍보물 제작까지 맡고 있다. 올해는 방송 이후 부스를 찾아와 직접 응원과 마음을 전해주는 독자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했다.

2025 서울국제도서전 은행나무 출판사 부스(왼), 이다은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블라인드 북포장 스티커. 은행나무
2025 서울국제도서전 은행나무 출판사 부스(왼), 이다은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블라인드 북포장 스티커. 은행나무

-패션과 사진 등에서도 남다른 감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어디서 미적 영감을 얻는가.

▶취향은 세상과 부딪히며 꾸준히 경험을 쌓을 때 깊어지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미디어와 시각 자료를 탐색하고 아카이빙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만의 미감이 자리 잡았다. 20대에는 영화의 미장센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요즘은 애니메이션의 과감한 연출과 색채 구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앞으로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가.

▶유행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단단하고 깊이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와 의미 있는 시리즈를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이너로서 큰 행운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텍스트에 가장 알맞은 옷을 입혀주는 작업을 이어가며 200권을 넘어 500권의 책을 정성껏 빚어내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