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일대 삼성반도체공장 부지로 용도 변경 허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도 반도체공장 건설 위해 경기도 이천 부발읍 토지 매입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은 국내외에 평지풍파를 몰고 왔다. 미국의 인텔은 삼성을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라고 비꼬았고,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협소한 내수시장, 연관 산업 취약,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투자자금 조달 능력 의문, 빈약한 기술 덕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비난과 반대의 소용돌이 와중에 1983년 10월 29일 전두환 대통령이 삼성의 부천 반도체공장을 방문했다. 이날 김광호 삼성전자 이사가 "이병철 회장이 도쿄 선언을 통해 VLSI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선언한 지 9개월 만에 64KD램 개발에 성공했다"라는 내용을 보고했다. 김광호 이사의 보고를 받은 전 대통령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이때까지 64KD램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미국 4개 사, 일본 6개 사에 불과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메모리 반도체 생산국 대열에 올랐다. 이것이 한국 첨단산업 개발사에서 중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날 전 대통령은 "외국의 견제가 들어올지 모르니 홍보를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삼성의 진출을 막기 위해 덤핑 공세를 할 수도 있으니, 우리가 시장을 개척해 쫓아갈 수 있는 단계가 될 때 알려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이병철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사업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것까지 간섭하는가"라며 서운하게 생각했다. 결국 삼성은 대통령의 조언을 무시하고 1983년 12월 1일, 64KD램 개발 성공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1983년 연말 전 대통령은 재계 원로들을 부부 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하여 만찬을 함께 했다. 이때 이병철 회장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64KD램 개발 때 대통령께서 광고하지 말도록 권유했다는 얘기를 듣고 납득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대통령께서 우려하신 대로 흘러갔다. 전 대통령은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는데, 나보다 뛰어난 사업 감각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삼성은 반도체 생산을 부천의 낡은 한국반도체 시설을 그대로 사용했다. 구시대적 설비로 미래 수요에 대비하기 어렵게 되자 이병철 회장은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 신설을 결정했다. 업의 특성상 대단히 까다로운 입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 깨끗한 공기와 풍부한 물, 물류가 용이한 지역을 집중 탐색한 끝에 용인군 기흥읍 농서리 일대에서 반도체 공장부지로 적합한 땅을 발견했다.
◆대통령이 눈 딱 감고 용도 변경 허가
삼성이 반도체공장을 지으려고 매입한 기흥 일대 40만 평의 땅은 청와대가 신도시 건설 부지로 검토했던 곳이다. 문제는 이곳이 산림보존 지역, 경지 지역, 상수도 보호지역이어서 공장을 지으려면 용도 변경이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대한 애로가 발생했다.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주장하는 상공부는 "기술 발전과 경제도약을 위해 해당 지역의 용도 변경을 허가해야 한다"라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농수산부는 "쌀이 부족한 마당에 농지를 공장용지로 용도 변경하면 쌀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진다"라며 강력 반대했다. 주무 부처인 건설부는 신도시 건설 운운하며 청와대의 눈치만 살폈다. 보고를 받은 전두환 대통령은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농사지어 얻은 쌀과 산업의 쌀 중 무엇이 더 큰 국익인가? 반도체라는 산업의 쌀을 만들어 수출해야 쌀도 사 먹고, 나라도 부강해질 것 아닌가"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의 결심을 전해 들은 건설부는 1983년 7월 5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일대를 삼성반도체공장 부지로 용도 변경을 허가했다. 삼성은 9월 12일 기흥에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대단위 VLSI 생산공장 기공식을 거행했다. 기흥공장 제1라인은 64KD램 반도체를 월 600만 개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이병철 회장은 이날 선진국에선 18개월 걸리는 공사를 6개월 내에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공장 건설 책임자인 성평건 공장장은 이 어려운 임무를 맡아 기한 내에 완공했다. 건설 공정과 시운전 과정을 지켜본 미국 인텔과 IBM, 일본 전문가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첨단 공장을 6개월 만에 완공한 기술진의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1984년 5월 17일 기흥에서 VLSI 공장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도 반도체공장 건설을 위해 경기도 이천 부발읍 지역의 토지를 매입했다. 공장용지 한가운데 절대농지와 초지가 포함돼 있어 삼성보다 상황이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곳이었다. 현대도 전두환 대통령의 결단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983년 9월 17일 용도 변경 허가를 완료했다.
당시 법률과 관료주의 잣대로 규제를 고수했다면, 삼성의 기흥 라인 6개월 준공 신화나 현대전자의 이천 반도체공장은 불가능했다. 최고 지도자가 '국가의 미래 먹거리'라는 큰 틀에서 과감한 특혜성 용도 변경을 단행한 결단이 오늘날 K-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토대를 닦은 것이다.
64KD램 개발·생산이 국내에서는 축제였을지 몰라도, 경영 차원의 현실은 참담했다. D램의 제품 수명주기는 평균 3년이다. 64KD램은 1981년 처음 시중에 출시되었다. 삼성의 64KD램 개발 시기는 이 제품의 끝물에 해당했다. 삼성이 천신만고 끝에 64KD램을 개발한 것과 거의 비슷한 1983년 말, 일본 히타치는 256KD램을 출시했다.
◆천문학적 적자 불구, 반도체 계속 지원
삼성이 64KD램 개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삼성을 짓밟기 위해 무자비한 덤핑 공세를 벌였다. 1985년 개당 3달러 50센트였던 64KD램의 국제가격이 불과 몇 달 만에 50센트로 곤두박질했다. 당시 64KD램의 제조원가는 1달러 70센트였으나, 판매가는 50센트에 불과했다. 삼성은 개당 1달러 20센트씩 손해를 봐야 했다.
삼성은 64KD램 출시 첫해인 1985년 42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1986년과 1987년에도 적자가 계속되어 1984년 이래 누적적자가 무려 1천159억 원에 이르렀다(강진구,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 고려원, 1996, 239쪽). 국제적으로 PC 시장에 불황이 닥치면서 256KD램 가격도 31달러에서 3달러로 대폭락했다.
삼성이 64KD램을 출시한 후 고전을 면치 못하자 반도체 반대 세력들은 "이러다 삼성 망한다"라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심각한 상황이 되자 전두환 대통령은 비서실에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실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객관적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개발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렸다(『전두환 회고록(2): 청와대 시절』, 자작나무숲, 2017(2), 221쪽). 전두환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믿고 반도체 산업을 계속 지원하라고 밀어붙였다.
삼성은 1984년 10월, 64KD램보다 기억량이 4배 늘어난 256KD램 개발에 돌입했고, 그로부터 10개월 후 개발에 성공했다. 좀처럼 감정 표현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이병철 회장은 이날 연구소를 찾아가 개발진을 얼싸안고 기뻐하며 일일이 격려했다.
펜앤마이크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