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식 칼럼] 사람을 키우는 대학이 지역을 바꾼다

입력 2026-08-28 14:38:47 수정 2026-08-28 15: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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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경북대 생명공학부 교수

이현식 경북대 생명공학부 교수
이현식 경북대 생명공학부 교수

우리는 흔히 대학의 위상을 가늠할 때, 사람들의 시선은 흔히 마천루처럼 솟아오른 거대한 건축물이나 번쩍이는 첨단 장비에 머문다. 화려한 브로슈어를 장식하는 웅장한 캠퍼스와 최신식 실험실은 분명 훌륭한 대학의 하드웨어다. 하지만 대학의 진정한 맥박은 차가운 콘크리트 벽이나 정교한 기계장치 속에서 뛰지 않는다. 그 공간의 여백을 채우며 치열하게 묻고, 아프게 실패하며, 기어이 다시 일어서는 사람의 뜨거운 숨결 속에 존재한다.

아무리 값진 품종의 씨앗이라도 메마른 흙에서는 푸른 싹을 틔울 수 없다. 특히 학령인구 절벽이라는 매서운 한파 속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고 이들의 발길을 캠퍼스에 머물게 하며 연구 중심 대학으로 가는 가장 강력한 자석은 결국 압도적으로 훌륭한 교육 환경이다. 청년들에게 낡고 비좁은 강의실을 내어주며 창조적 비상을 요구하고, 신진 연구자에게 메마른 연구 환경을 쥐여주며 세계적 성과를 다그치는 것은 모순이다. 첨단 디지털 인프라가 구축된 스마트 학습 공간, 창의적 토론과 휴식이 공존하는 쾌적한 학생 중심의 인프라, 그리고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장학과 주거 제도는 단순한 시혜적 복지가 아니다. 그것은 지식의 바다를 거침없이 항해하기 위해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가장 견고한 인프라이자, 대학의 생존을 결정짓는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거대한 숲을 완성하는 가장 깊고 단단한 뿌리는 결국 사람 그 자체다. 대학은 사람의 열정을 연료로 소모하는 공장이 아니라, 사람의 가능성을 우주로 팽창시키는 요람이어야 한다. 학부생은 수준 높은 교육의 세례 속에서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발견해야 하고, 대학원생은 값싼 톱니바퀴가 아닌 내일의 학문을 견인할 젊은 지성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박사후연구원과 신진 연구자는 당장의 성과에 쫓기지 않고, 긴 호흡으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야 하며, 교수는 진리 탐구라는 사명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직원은 행정의 수동적 처리자가 아니라, 대학 혁신의 수레바퀴를 함께 굴리는 존경받는 파트너로 바로 서야 한다.

대학이라는 공동체는 하나의 거대하고 정교한 교향악단과 같다. 학생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현악기, 연구자라는 도전적이고 날카로운 관악기, 교직원이라는 든든하고 안정된 타악기의 리듬, 그리고 지역사회라는 울림이 풍부한 무대가 완벽하게 공명할 때 비로소 혁신이라는 웅장한 교향곡이 완성된다. 어느 한 파트의 소리가 묻히거나, 누군가의 현이 팽팽하게 조율되지 않은 채 낡아간다면 결코 세상을 전율케 할 연주를 들려줄 수 없다.

특히 대구·경북이라는 토양에 깊게 뿌리내린 거점 국립대에서, 사람을 향한 투자는 곧 지역의 명운을 쥐고 있는 가장 확실한 미래 전략이다.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는 까닭을 단순히 얄팍한 월급봉투의 두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은 "이 척박한 땅에서 내 날개를 온전히 펼칠 수 있는가", "실패의 늪에 빠져도 다시 비상할 기회가 주어지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절박한 메아리에 대학이 응답하지 못하면 청년이라는 철새는 둥지를 미련 없이 떠난다. 반대로 대학이 탁월한 지식의 샘을 내어주고, 지역사회가 그들의 성장을 넉넉한 품으로 안아줄 때, 청년은 비로소 이곳을 자신의 뼈를 묻을 단단한 대지로 삼는다.

대학은 단순히 지역 산업의 기계 부품을 찍어내는 조립 라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의 광맥을 한발 앞서 찾아내고, 공동체의 낡은 관성을 깨우는 맑은 샘물이 되어야 한다. 대학 안에서 교육이 새로워지고, 연구가 더 과감해지며, 행정과 제도가 사람의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바뀔 때 그 혁신은 캠퍼스 담장 안에 머물지 않는다. 학생의 태도를 바꾸고, 연구실의 질문을 바꾸며, 결국 지역 산업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힘으로 번져간다. 명강의 하나가 학생의 시야를 저 은하수 너머로 확장하고, 연구실의 작은 통찰이 지역 기업의 폭발적 혁신을 견인하며, 인문학의 따뜻한 시선이 사회의 차가운 갈등을 녹여낼 때, 대학은 비로소 지역사회의 거대한 심장으로 박동한다.

혁신을 주창할 때마다 거창한 이름의 평가 지표와 거액의 예산이 오가는 사업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 화려한 청사진 앞에서 우리가 벼려야 할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이 변화가 진정 우리 안의 사람을 더 빛나게 하는가." 학생의 눈동자를 더 깊게 만들고, 연구자의 심장을 더 맹렬히 뛰게 하며, 교수와 직원의 가슴에 더 묵직한 긍지를 심어주는가. 사람의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는 혁신은 계절이 바뀌면 사라지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세상의 물길을 바꾸는 위대한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발원한다. 웅장한 건물은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첨단 기계는 녹슬어 가지만, 대학의 너른 품에서 단단하게 여문 사람은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어 기어이 울창한 새로운 숲을 이룬다. 대구·경북이 다시 한번 위대한 도약의 날갯짓을 하려면, 거점 국립대는 사람을 키워내는 가장 비옥한 대지가 되어야 한다. 훌륭한 대학이 걸출한 사람을 잉태하고, 그 사람이 다시 위대한 지역을 빚어낸다. 대학의 찬란한 내일도, 대구·경북의 눈부신 100년도 결국 사람이라는 사라지지 않는 인프라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