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학폭 심의 건수 5건 중 1건 '학폭 아님' 결론
학교·교육청 행정력 낭비…중요한 사안에 집중 못해
#지난해 10월 대구 한 중학교에서 학생 A양은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급우인 B양이 교실의 좁은 책상 사이를 지나가다 텀블러를 포함한 자신의 물건을 떨어뜨려서다. A양은 "일부러 떨어뜨리고 사과도 없이 가버렸다"고 주장했고, B양은 "물건을 떨어뜨린 줄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두 달 뒤 학폭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심의 결과 '학폭 아님'으로 결론이 나왔다.
전국 학교에 접수된 학폭 신고 가운데 학폭으로 보기 어려운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 사이의 일상적 다툼까지 모두 '학교 폭력'으로 걸면서 학폭 신고가 오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폭 아님 건수 3년 새 4배 증가
26일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학폭 신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초·중·고교에 접수된 학폭 신고는 2천272건이었다. 이 가운데 학폭위 심의가 열린 것은 1천128이었고, '학폭 아님' 결론이 내려진 건 207건을 기록했다. 전체 신고 10건 중 1건(9%), 심의 건수 5건 중 1건(18%)은 학폭으로 보기 어려운 사안인 셈이다.
대구 지역 학폭 심의 건수 중 '학폭 아님'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22년 5%(859건 중 46건)에서 작년 18%(1천128건 중 207건)로 3년 새 4배 이상 늘었다.
이런 현상은 학생들이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민감하게 문제 삼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 1학기 대구 한 초등학교에선 일면식도 없는 학생이 복도에서 자신을 째려봤다는 이유로 학폭 신고가 접수됐다. 대구 한 고등학교에서도 체육 시간에 상대 학생이 몸을 부딪혔다는 이유로 학폭 신고가 이뤄졌다. 이 사례들은 모두 학폭위 심의 결과 '학폭 아님' 결론이 났다.
무분별한 학폭 신고로 학교와 교육청은 늘어나는 학폭 사안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중학교 교사 이모(35) 씨는 "학폭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해당 학생들의 동선을 분리하고 관련 생활지도를 해야 한다"며 "학폭 사건이 맞나 싶은 경우도 많지만 신고가 들어온 이상 학교는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 학폭 사안이 접수되면 최대 7일 동안 두 학생의 공간을 완전히 떼어놓는 즉시분리를 적용한다. 이후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의도적인 접촉만 금지하는 긴급조치 2호가 이행된다.
초등학교 교장 윤모(57) 씨는 "무분별한 학폭 신고로 학교와 교육청의 행정적인 소모가 크다"며 "가벼운 학폭 신고, 심의 건수가 늘어나면 정작 중요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처벌 대신 교육적 관점서 해결
교육 당국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적 관점에서의 갈등 해결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관계회복 숙려제'를 도입했다. 이는 가벼운 학폭 사안에 한해 심의 이전 단계에서 약 2주간 숙려 기간을 먼저 거치도록 하는 제도로, 기존 징계 중심에서 '학생 간 관계 회복'으로 학폭 대응 패러다임을 재편하겠다는 취지다.
대구시교육청은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2019년부터 '관계회복지원단', 지난해부터 '갈등조정지원단'을 도입했다. 학폭 사안이 발생하면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 기구가 학교로 직접 찾아가 사안을 중재하고 관계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현장에선 제도 효과가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의 경우 올해(7월 기준) 관계회복지원단과 갈등조정지원단이 124건의 조정을 진행했는데, 이 가운데 113건(91%)이 관계 회복에 성공해 학폭위 심의가 열리지 않았다.
아울러 무분별한 학폭 신고를 줄이기 위해 학부모 인식 제고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올해부터 학부모 대상 학교폭력 예방 교육인 '생활교육 토크: 애지중지(愛之重之)'를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단순히 학교 자체 해결을 지원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피해 학생의 상처는 보듬어주고 가해 학생은 변화를 위해 노력하도록 관계 회복을 지원한다"며 "학교 현장의 갈등을 처벌보다는 교육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택환 대구교육대 부총장은 "개인주의와 핵가족화가 확산되면서 또래 사이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며 "학폭 신고 자체를 제도적으로 막기는 어렵기 때문에 교육적 해결 방식이 학생들에게 더욱 도움이 된다는 인식 조성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