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3월 퇴임한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을 정하지 못해 그 자리를 반년 가까이 공석(空席)으로 뒀다. 그러던 중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추천한 지 209일 만이다. 이는 다른 대법관 평균 제청 소요 기간인 12.1일의 17배가 넘는다. 다음 달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함께 제청됐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여권에서는 '대통령 패싱'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심지어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조희대 씨' '퇴학시켜 달라고 구걸하는 불량 학생' 등 험한 말과 함께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문제는 관례(慣例)였다. 사전 협의 후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대법관 후보를 제청해 온 관례를 깨고 서면으로 제청했다는 것이다.
관례가 지켜지지 않은 건 유감(遺憾)이다. 그러나 19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의 설명이 맞다면 면담 요청을 거부한 건 청와대다. 사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책임도 대법원장에게만 지울 수 없다. 합의를 위해 무조건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를 받아들일 순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의견이 일치될 때까지 대법관 빈자리를 무작정 비워둘 수도 없다. 공석 사태가 길어질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헌법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법관 제청권은 대법원장의 권한이라는 말이다. 제청 거부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국회는 인사청문회와 본회의를 통해 부결(否決)할 수 있다. 노 처장도 "대통령이 원하는 분을 무조건 제청해야 한다면 헌법에 제청권을 규정할 이유가 없다"며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권리가 있고 이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는 각각 임명권과 동의권을 행사하면 된다"고 했다.
설사 사전 협의 및 대면 제청이라는 관례가 지켜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관례가 헌법 위에 있을 순 없다. 그리고 대법원장의 '대통령 패싱'이 아니라 청와대 면담 요청 거부로 관례가 깨진 것이라면 대통령 사퇴·탄핵도 거론할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