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칼럼] 파괴는 개혁이 아니다.

입력 2026-10-05 12: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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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가 중대한 전환을 맞고 있다. 검찰청이 폐지되고 법무부 장관 소속 공소청과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 중대범죄수사청이 신설됐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의 완성이라고 평가하지만, 국민의힘은 권력 강화 목적의 '형사사법체계 파괴'라고 비판한다. 검찰의 권한을 분산한다는 명목 아래 실제로는 권력기관을 통제하에 두고 정치적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수사와 기소 권한의 집중에서 비롯된 권한 남용과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모든 개편의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수단이지 성과가 아니다. 검찰의 권한을 줄였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권리가 강화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비약이다. 권한이 어디로 이동했고, 그 권한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경계한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었다. 오래된 제도의 결함을 고치려다 그 제도가 수행하던 필요한 기능까지 허무는 성급함이었다. 이 관점에서 개혁의 성패는 검찰청의 존폐로 판정할 수 없다. 범죄를 밝혀내는 역량, 공정한 기소,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 시민의 권리구제를 새 체계가 얼마나 충실히 이어받는지가 판단 기준이다. 제도는 폐지할 수 있지만, 국가가 져야 할 책임까지 폐지할 수는 없다.

법 철학자 론 풀러는 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규칙이 명확하고 안정적이어야 하며, 공권력의 행동이 공표된 규칙과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사사법체계의 대전환에서 이 원칙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뀐다. 피해자는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가. 기관 사이에서 사건이 떠돌며 수사가 지연되면 누구에게 시정을 요구해야 하는가. 부실 수사와 부당한 불기소에는 어떻게 불복할 수 있는가. 피의자는 자신을 조사하는 기관의 권한과 절차를 예측할 수 있는가. 민주당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치안 붕괴 지옥의 문'이 열리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추진한 검찰개혁을 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만이고 착각이다. 더 중요한 쟁점은 정치적 독립성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였다면 새 기관은 그보다 강한 독립성과 책임성을 갖춰야 한다.

서로 다른 장관 소속으로 기관을 나누었다고 정치권력과의 거리가 저절로 멀어지지는 않는다. 인사권과 지휘권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고, 권력형 비리 수사가 어떻게 보호되는지 살펴야 한다. 수사기관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사건을 덮을 때 이를 바로잡을 통로가 없다면 권력 분산은 구호고 권력 강화가 본질이다. 수사기관의 잘못을 기소 기관이 어떻게 바로잡고, 기소 기관의 잘못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사건 이관 과정에서 증거가 누락되거나 책임 공방으로 수사가 늦어질 때 누가 최종 책임을 질 것인가.

어느 기관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국민에게는 체제 개편보다 책임 실종이 먼저 다가온다. 개혁의 성과는 기관 수가 아니라 사건 처리의 공정성과 권리구제의 실효성으로 입증돼야 한다. 따라서 집권 세력은 검찰개혁 완성을 선언할 때가 아니다. 정치적 수사 개입을 차단하는 장치, 수사 기관의 부작위를 시정할 절차, 피해자의 불복권, 기관 간 분쟁을 해결할 기준, 공룡화된 경찰을 견제할 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대책이 없는 개혁은 사상누각이고 허구다.

민주주의에서 개혁을 가르는 것은 명료하다. 법이 권력을 제한하는가, 아니면 권력이 자신에 대한 제한을 제거하는가. 특정 정치세력의 사법적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작동한다면 더 이상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과거 검찰의 권한 남용은 새 수사 기관의 정치적 종속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분명 민주당은 개혁의 거창한 이름으로 권력을 지키려고 견제를 허물었다. 결국 개혁을 포기하고 파괴를 선택한 것이다.

단언컨대, '개혁으로 포장된 파괴'에 도취 된 집권 세력의 형사사법체계 개편은 '필연적 실패'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제도를 발견하고도 수정하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결국 국민과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당장의 권력 강화를 위해 훼손한 제도가 결국 자신의 통치 기반과 정당성까지 무너뜨릴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피해를 보는 국민의 거대한 분노와 단호한 응징만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파괴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