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모의 영혼의 울림을 준 땅을 가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 아래, 라다크를 가다

입력 2026-08-20 10: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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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디스킷 곰파의 32m 미륵불상은 누브라 밸리를 굽어보는 평화의 상징이다.
14세기 디스킷 곰파의 32m 미륵불상은 누브라 밸리를 굽어보는 평화의 상징이다.

◆숨 막히도록 푸른 고갯길의 땅으로

인도 북부, 히말라야의 거친 숨결이 닿는 곳에 라다크(Ladakh)가 있다. '높은 고갯길의 땅'이라는 그 이름처럼, 이곳은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이자 척박함 속에 피어난 영혼의 안식처다. 스웨덴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책 <오래된 미래>를 통해 세상에 알린 이곳은, 여전히 문명의 속도에 저항하며 태고의 시간성을 간직하고 있다.

해발 3천 m에서 5천 m를 넘나드는 고원 지대. 남한과 맞먹는 드넓은 면적(9만 8천 ㎢)에 사는 이는 고작 15만 명 남짓이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겨울이 8개월 넘게 이어지고, 대지에 초록의 생명이 허락되는 시간은 일 년 중 겨우 4개월뿐이다. 하지만 이 가혹한 결핍의 땅은 도리어 전 세계 여행자들의 가장 뜨거운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은 순수의 풍경,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모험이자 고독한 수행이다.

◆히말라야 넘어 라다크로 가는 길

고산병은 이곳을 찾는 이들이 치러야 할 일종의 통과제의다. 2022년부터 라다크 당국은 고개를 넘기 전 레에서 최소 이틀간 의무적으로 고산 적응 기간을 갖도록 의학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외지인들은 고산병 예방약을 먹으며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다.

'천천히, 더 천천히 걸으세요. 라다크에서는 시계 바늘도 느리게 갑니다.'

현지 가이드의 나지막한 조언은 단순한 건강 수칙이 아닌, 이 땅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레의 판무관 사무실에서 내선 허가증(ILP)을 발급받아야만 비로소 더 깊은 요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의 도로들은 좁은 1차선 구간이 많아 눈사태, 유실,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몇 시간
씩 멈춰 서기 일쑤다. 겨울철에도 군사적 목적으로 도로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대자연이 길을 막아서면 인간은 그저 겸손하게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스마트폰 화면 대신 공식 레(Leh) 사이트의 도로 업데이트 정보와 하늘의 눈치를 살피는 것, 그것이 라다크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세계 최고 높이의 자동차도로 카르둥라의 숨 멎을 듯한 고도와 장엄한 설산이 모험의 설렘을 안겨준다.
세계 최고 높이의 자동차도로 카르둥라의 숨 멎을 듯한 고도와 장엄한 설산이 모험의 설렘을 안겨준다.

◆세계서 가장 높은 자동차도로 카르둥라

레를 떠나 북쪽 라다크 산맥을 향해 차를 달린다. 목적지는 인더스강 유역과 시욕(Shyok)강 유역을 잇는 거대한 관문, 카르둥 라(Khardung La)다. 해발 5,602m로 알려진 이 고갯길은 가드레일 조차 없는 천 길 낭떠러지의 연속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경외감을 넘어 공포를 자아낸다. 마주 오는 차량이 경적도 없이 모퉁이를 돌아 갑자기 나타날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차 안에 동승한 산소통과 산소 스프레이가 여행자들의 유일한 생명줄이 된다. 해발 5천m를 넘어서자 대지에서 나무가 완전히 사라졌다. 삭막하고 거칠게 사방을 메운 회색빛 암석과 만년설은 마치 지구가 아닌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차 문을 여는 순간, 칼날 같은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평소 아무렇지 않던 몇 발자국이 이곳에서는 짧은 등반이 되었다. 가슴은 빠르게 뛰
었고 숨은 깊게 들이마셔도 허전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히말라야의 능선은 그 모든 고통을 잊게 만들 만큼 압도적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설산과 황갈색 암릉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고, 구름조차 산 아래를 흘러갔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 아래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가드레일조차 없는 아찔한 절벽 길은 지구에서 가장 험준한 산악 도로의 위용이 여행자를 압도한다.
가드레일조차 없는 아찔한 절벽 길은 지구에서 가장 험준한 산악 도로의 위용이 여행자를 압도한다.

마침내 도달한 카르둥 라 정상. 거센 히말라야의 칼바람 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 도로(HIGHEST MOTORABLE ROAD IN THE WORLD)'라는 낡은 표지판이 서 있다. 비록 최근 카라코람 인근의 움링 라(Umling La) 고개가 개통되면서 최고의 타이틀은 내어주었지만, 여전히 이곳이 지닌 상징성은 독보적이다. 대륙을 종단해 온 인도 바이커들과 세계 각국의 모험가들이 이 표지판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인생의 한 장면을 기록한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표지판 한쪽의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당신의 건강을 위해 이곳에 20분 이상 머물지 마시오.' 희박한 산소와 영하를 넘나드는 변덕스러운 기온은 인간에게 오래 머물 힘을 허락하지 않는다.

1976년에 건설돼 1988년에 민간에 개통된 이 길은 사실 인도군이 시아첸 빙하(Siachen Glacier)베이스캠프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핵심 군사 요충지이기도 하다. 치열한 국제 정치의 긴장감과 대자연의 엄숙함이 조화를 이룬 이곳에서, 여행자는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의 미약함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갈색 산맥에 둘러싸인 초록빛 누브라 밸리는 척박한 대지 위에 피어난 자연의 기적이다.
갈색 산맥에 둘러싸인 초록빛 누브라 밸리는 척박한 대지 위에 피어난 자연의 기적이다.

◆황량함 속에 피어난 꽃의 계곡 '누브라 밸리'

카르둥 라의 아찔한 높이를 내려와 좁고 험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면, 거짓말처럼 아늑하고 평온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인더스강의 지류인 시욕강과 누브라강이 만나 빚어낸 삼중 팔 모양의 거대한 분지, 바로 누브라 밸리(Nubra Valley)다. 평균 해발 고도가 3천 m 정도로 레보다 낮아, 고개에서 짓눌렸던 가슴이 비로소 편안하게 열린다.

급경사의 굽잇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자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다. 메마른 바위산뿐이던
풍경 사이로 작은 풀잎이 보였고, 이어 포플러와 버드나무가 하나둘 나타났다. 회색 일색이던 산골짜기는 어느새 초록빛 생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멀리 에메랄드빛 시욕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계곡에는 살구와 보리밭이 평화롭게 펼쳐졌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숨조차 버거웠던 고산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자
연은 단 몇 킬로미터의 높이 차이만으로도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언덕 위 디스킷 곰파에서 바라본 누브라 밸리는 끝없이 펼쳐진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언덕 위 디스킷 곰파에서 바라본 누브라 밸리는 끝없이 펼쳐진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티베트어로 '둠라'(Dumra), 즉 '꽃의 계곡'이라 불리는 누브라는 황량한 라다크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 사이에 숨겨진 낙원이다. 거친 암석산 사이로 흐르는 에메랄드빛 강물과 그 주변을 따라 푸르게 조성된 오아시스 마을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과거 이곳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야르칸드, 발티스탄으로 이어지던 번영의 교역로였다.

비록 1947년과 1950년의 역사적 격변 속에서 국경이 닫히며 왕래는 끊어졌지만, 중심 마을인 디스킷(Diskit)의 거대한 불상과 오래된 사원들은 여전히 찬란했던 시간의 자취를 품고 있다.

누브라강과 시욕강이 만든 계곡을 잇는 출렁다리는 척박한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생명의 길이다.
누브라강과 시욕강이 만든 계곡을 잇는 출렁다리는 척박한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생명의 길이다.

척박한 바위산 아래 펼쳐진 초록의 대지 위를 한가롭게 거니는 야크떼 들의 모습은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거친 바람이 모래 언덕을 스치고 지나갈 때, 문득 이 고독한 풍경이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ymahn11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