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정난정을 찾아서

입력 2026-08-20 1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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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프사이드
김미조 지음/ 안전가옥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딸의 결혼을 앞둔 60대 여성의 미투를 다룬 영화 '갈매기'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기대주 김미조 감독이 소설을 발표했다. 때는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 대 스페인의 8강전 경기가 열리는 날. 무기수와 교도관이 동시에 사라진다. 그것도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역량 있는 신인의 경·장편을 선보여온 출판사 '안전가옥'의 35번째 작품이자 김미조의 소설 데뷔작 『오프사이드』는 부친상으로 귀휴 나온 무기수 판금과 판금의 동행이자 관찰자인 교도관 윤지오가 다른 목적, 같은 인물을 찾는 과정을 통해 모성과 인간애를 회복하는 집요한 추적극이다.

'오프사이드'는 영화감독이 쓴 소설답게 후더닛(whodunit) 무비의 전형을 유지한다. 이야기 초반이 정난정은 누구이고 왜 정난정이 되었으며 그녀를 정난정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사정은 무엇인지에 치중한다면, 후반은 몇 번의 반전을 거치며 무기수 판금과 교도관 윤지오의 인간 회복 가능성을 타진한다.

봉준호가 '살인의 추억'에서 고발한 80년대 한국사회의 자화상. 이를테면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데도 시위에 동원되어 지원 병력이 올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을, 범죄보다 사회가 더 어둡고 범인보다 권력이 더 악했던 세상을 보여주었다면, 김미조의 소설은 2002월드컵이라는 범국가적인 용광로 중심에서 사적 분투와 공적 엇갈림을 가르는 가늘고 희미한 선 하나를 부여잡고 질주한다. 움직이고 달리고 분노하고 비탄에 빠지며 허탈해하고 곤혹스러운 현실에 어쩔 줄 모르는 두 여성이 가족사의 비밀을 추적하는 동안, 용의자들은 각기 다른 얼굴로 바꿔가며 이야기를 미궁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귀휴 기간 동안 지오는 의도치 않게 판금의 많은 모습을 보았다, (중략) 하지만 그 너머에는 목숨만큼 소중한 자식이 있었고, 판금은 가석방이라는 희망 하나만 붙든 채 버티고 있었다." (183쪽)

윤지오와 판금은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 앞에서 여성 연대로 뜨겁게 돌진한다. 산간벽지와 절해고도를 넘나드는 탐문과 추적 행각 끝에서 만나는 건 '모성'이다. 흔해 빠지다 못해 낯선 느낌마저 드는 이 해묵은 단어 속에 두 사람을 집어넣고 건조기 돌리듯 세차게 돌리는 작가의 뚝심이 남다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작가는 두 번의 탈북 시도와 두 번의 북송이라는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며 세 번째 탈출을 감행한 탈북 여성의 이야기(갓난아기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딸을 향한 간절함)와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와 그를 믿어준 교도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힌다.

영화를 만드는 것과 소설을 쓰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영화가 시나리오 쓰고 투자와 캐스팅 마친 후 촬영하고 편집과 후반 작업을 거치는 동안 관계의 힘으로 완성되는 작업이라면, 플롯 짜고 글로 풀면서 독자 스스로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소설 쓰기는 철저하게 혼자만의 싸움이다. 결코, 만만할 리 없다. 인물들이 한 가지 목표만 보고 달리도록 자신의 욕심을 누르고 제어한, 그 힘든 작업을 해낸 소설가 김미조에게 축하를 보낸다. 참고로 김미조의 신작 영화 '경주기행'이 이달 26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