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포스텍 교수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리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북미대화 시즌2 성사 여부에 대한 예측과 논평이 무성하다.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지시 이후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미군사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는 당초 11일 일정에서 5일로 급히 단축되었다. 사전 조율조차 없이 외국 대통령의 한마디로 예정된 훈련이 변경된 어이없는 상황에 대하여 우리 정부는 별다른 유감 표시조차 없다. 오히려 남북관계 회복의 좋은 신호탄이라고 반기는 분위기다. 설사 속내가 그렇더라도 주권국의 예정된 군사훈련이 일방적으로 변경된 데 대한 분명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했지만, 우리 외교라인에서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는 아직 군사·외교적으로 온전한 자주독립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연합군사훈련·작전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그 시종을 더듬어 보자. 혹자는 1945년 태평양전쟁 막바지 미군 OSS(전략첩보국, CIA의 전신)와 광복군이 함께 준비했던 독수리 작전(Operation Eagle)을 한미군사훈련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임박한 종전을 앞두고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1925년 탄핵당해 물러났던 워싱턴의 이승만을 다시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미국에 임시정부 승인과 광복군의 연합군 참여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할점령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미국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광복군을 OSS에 붙여서 합동훈련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이 단독으로 조선진공작전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했다. 결국 광복군은 한 차례도 제대로된 전투를 벌이지 못하고 훈련만 하다가 해방 후 해산명령을 받았다.
미군은 패전국 일본의 점령지 남한을 접수하기 위한 작전명 '오퍼레이션 블랙리스트'에 따라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했다. 중앙청에 성조기가 올라가고, 용산 일본군 기지는 미군기지가 되었다. 이후 미군정은 일제하 관료·경찰 인력을 재등용하여 좌우합작과 남북통합정부를 추진하던 좌익세력과 인민위원회를 억압하였다. 1946년 10월 1일 친일경찰 중용에 반대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이던 대구에 계엄령을 선포하여 진압하였다. 제주 4·3의 참극, 미군정 고문단은 진압정책과 군·경 작전을 기획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여수·순천 사건에서도 미군 고문단이 한국군 진압작전에 관여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서 재산을 빼앗기고 월남한 반공 청년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단을 빨갱이 사냥에 활용한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장기화된다. 1953년 7·27 정전협정은 정전 후 외국군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협의하도록 권고했지만, 그해 체결된 불평등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군은 장기주둔의 뿌리를 내린다. 이후 북한이 '핵전쟁 연습'이라고 거세게 비난해온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팀 스피릿이 1976년 시작됐다.
한반도에 평화의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한미연합훈련은 화두에 올랐다. 노태우 정부 시절 찾아온 첫 번째 평화공존의 기회에는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이어졌다. 한국에 남아 있던 미군 전술핵도 전면 철수되었으며, 북한의 IAEA 핵사찰 수용과 연계해 1992년 팀 스피릿도 중단되었다. 한소수교와 한중수교에 이어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한미군사훈련이 재개됐고 북한은 3일 뒤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제1차 북핵위기가 본격화됐다.
2018년에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결정했다. 그리고 2026년, 이번 한미군사훈련 단축을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북한은 냉소를 퍼붓는다. "가긍하다." 한마디로 애처롭고 불쌍하다는 뜻이다. 수모다. 그러나 할 말이 없다.
《서간도 시종기(西間島始終記)》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 이은숙 여사가 1910년 서간도 망명부터 독립군의 산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훈련시키던 시절을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겪은 항일 독립운동과 고난의 역사를 기록한 회고록이자 가슴 절절한 수기이다.
우리는 언제 《한미군사훈련 시종기》를 쓸 수 있을까? 언제 우리는 전작권을 회수하고 우리 스스로 군사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모진 풍상 속에서도 인생을 바쳐 독립군을 키워냈던 신흥무관학교 선배들의 떳떳하고 당당한 기개를 되찾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