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거대한 실험장에 갇힌 한국"

입력 2026-08-16 15: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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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국장석 부장

이상준 국장석 부장
이상준 국장석 부장

2015년 여름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한 중국 상하이 증시 대폭락은 정부의 시장 개입이 거대한 역풍으로 돌아온 대표적 사례다.

2014년 6월부터 약 1년간 150% 이상 급등한 A주(중국 본토 상장주식)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30% 넘게 급락했다. 증시 부양 기조 속에 레버리지 투자를 방치한 중국 정부가 뒤늦게 전방위적 규제를 단행했지만, 불신과 변동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로부터 11년.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나 일어날 줄 알았던 증시 대폭락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에서 재현(再現)됐다. 대한민국 코스피가 불과 27거래일 만에 40% 폭락한 것이다.

우리나라 증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폭락 과정은 중국과 판박이다. 정부 주도의 증시 부양책이 과열과 빚투로 이어졌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을 제대로 된 검토 없이 허용해 투기 광풍을 자초했다.

폭락 원인을 분석한 외신(外信)의 평가는 참담(慘澹)하다.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을 두고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와 시장 투기(market speculation)의 극단을 결합한 거대한 실험장"이라고 직격했다.

미국 블룸버그의 슐리 렌 칼럼니스트는 '한국 역시 투자 부적합 국가가 되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또 다른 중국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중국을 '투자 부적합 국가'로 비판해 왔는데, 주된 이유는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었다"며 "한국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은 부동산 정책 실패다. 정부가 이달 발표한 8·3 세제개편과 8·13 공급 대책은 안그래도 성난 부동산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실거주'에 지나치게 집착한 세제개편은 사실상 국민의 거주이전 자유까지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실패한 노무현·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답습(踏襲)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 발표와 똑같은 내용을 재탕했다는 지적을 받는 공급대책은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공급 대책이 급하다곤 하지만 녹지 훼손까지 정당화할 순 없다는 것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고 썼다.

문제는 역효과와 부작용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투자에 쏠린 자금을 돌리기 위한 인위적 부양책은 증시 대폭락 사태의 발단(發端)이 됐다. 집값 잡기에만 골몰한 부동산 규제 정책은 거래 절벽과 전월세 대란으로 이어지며 서민의 주거 사다리를 흔들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 2개월간 경제 정책 역시 포퓰리즘과 정치 논리에 빠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n% 성과급, 초과이익 공유, 호남반도체 투자 등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남발했다. 여당 주도로 강행한 노란봉투법 입법은 '파업의 시대'를 다시 열었다.

정부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존재가 아니다.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섣부른 정책은 신뢰를 잃었고 자산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지금 한국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과 정책 헛발질이 초래한 '거대한 실험장'에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