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후손 절반 이상 월소득 200만원 미만…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 6.4%
오는 12월 친일재산귀속법 시행…재산 처분했더라도 그 대가 환수할 방침
#1906년 10월의 어느 날, 수백년간 대구를 둘러싸고 있던 읍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철거를 주도한 인물은 당시 대구군수 겸 경북관찰사 서리였던 박중양이었다. 한국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아들로 불릴 만큼 일제와 가까웠던 그는 일본인들의 대구 장악을 돕기 위해 인부 60여명을 동원해 읍성을 훼손했다.
이후에도 박중양은 일제에 적극 협력하며 관료로 승승장구했고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 1919년에는 '자제단'을 조직해 3·1 만세운동을 억누르면서 조선총독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대구 침산동에 대저택을 짓고 살았으며, 그가 남긴 상당한 재산도 국가 환수가 이뤄지기 전까지 유족들이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후손은 생활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 출신으로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고(故) 이상정 장군의 손자 이재윤 씨가 대표적이다.
이 씨는 월세 15만원짜리 쪽방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렵게 생활해 왔다. 세 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오른팔과 다리가 불편한 그는 현재 요양병원에서 지내며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고 토로했다.
광복절 81주년을 앞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엇갈린 삶이 재조명받고 있다.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형성된 재산이 대물림된 사례가 있는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 상당수는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에 놓여 있다.
◆ 빈곤에 허덕, 애국지사 후손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열악한 경제적 현실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광복회가 지난해 독립유공자 후손 8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평균 가구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응답자가 443명으로 전체의 52%에 달했다.
낮은 소득은 현재 보훈정책에 대한 평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국가보훈부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한 후손은 61.6%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가장 시급하게 요구하는 정책 역시 경제적 지원 확대였다. 응답자의 약 70%가 '보훈연금 및 지원 대상 확대'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꼽았다.
경제적 어려움과 부족한 지원은 삶에 대한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한 후손은 6.4%에 그쳤다. 독립운동을 기리고 후손을 예우하기 위한 각종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정작 후손들이 체감하는 지원과 생활 여건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인열 광복회 대구시지부 사무국장은 "친일파 후손들이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물려받은 것과 달리,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선대가 모든 것을 내놓은 탓에 가난을 대물림해 왔다"며 "재산이 없으니 교육받기 어려웠고 안정적인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 현재는 후손들이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스스로 일어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법무부, 친일재산 환수 착수
독립운동가 후손 상당수가 생활고를 겪는 현실과 맞물려 친일재산을 적극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축적한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국가에 귀속하고, 이를 독립운동가와 후손의 예우·지원 등에 활용해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도 친일재산 환수 문제에 불을 지폈다. 일제강점기 의사였던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알려지면서 관련 재산이 후손에게 넘어갔더라도 친일의 대가로 취득했다면 국가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을 환수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친일재산귀속법)이 오는 12월 3일 시행된다.
환수 대상은 러일전쟁 개전일인 1904년 2월 8일부터 광복일인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다.
해당 법령은 재산이 이미 처분된 경우에도 그 대가를 환수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법무부는 친일 재산을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2010년 활동이 끝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도 16년 만에 다시 구성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친일재산 환수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사리사욕으로 공동체를 배반한 이들을 단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라며 "친일재산귀속법을 통해 반민족 행위자가 부당 축적한 재산을 조사·환수해 책임을 묻고 본보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친일 행위로 만들어진 재산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쓰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며 "대한민국이 독립운동가가 세운 나라라는 전제 속에서 친일재산 환수는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을 세우는 상징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