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핫플레이스] 에어컨보다 시원한 제주 '지하세계'…폭염 피할 동굴 명소

입력 2026-08-12 13: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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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은 총길이가 약 7.4km에 이르며, 구간에 따라 2층 또는 3층 구조가 발달한 용암동굴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만장굴은 총길이가 약 7.4km에 이르며, 구간에 따라 2층 또는 3층 구조가 발달한 용암동굴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제주 여름 하면 바다와 계곡, 오름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올해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조금 다른 선택지도 있다. 30도를 훌쩍 넘는 바깥에서 잠시 벗어나 서늘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 뜨거운 햇볕 아래 해수욕장과 계곡을 찾는 대신 수십만 년 전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지하세계로 들어서면 한순간에 공기가 달라진다. 바깥에서는 땀이 쏟아질 정도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지만 동굴 안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피부를 스친다.

◆2년 5개월 만에 돌아온 만장굴

지난 8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만장굴을 찾았을 때 주차장은 차량으로 가득했고 매표소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입구 주변만 해도 땀이 흐를 정도였지만 동굴로 향하는 계단을 몇 걸음 내려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뜨거운 햇볕 대신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바깥의 매미 소리와 사람들의 소음은 점차 멀어지고, 차갑고 습한 공기만이 몸을 감쌌다.

협재굴 내부에는 천장에서 뻗어 나온 석종과 마치 바닥으로부터 솟구쳐 나온 듯이 보이는 석순 등이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한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협재굴 내부에는 천장에서 뻗어 나온 석종과 마치 바닥으로부터 솟구쳐 나온 듯이 보이는 석순 등이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한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만장굴 내부 온도는 한여름에도 대체로 11~15도 안팎을 유지한다. 동굴 입구에 외부와 내부의 온도 차가 크니 겉옷을 준비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을 정도다. 만장굴은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들어진 세계적인 규모의 용암동굴이다. 총 길이는 약 7.4㎞에 달하고 주 통로는 최대 폭 18m, 높이 23m에 이른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천연기념물로도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탐방객이 걸을 수 있는 구간은 전체 가운데 약 1㎞다. 동굴 중간 천장이 무너지면서 모두 3개의 입구가 형성됐으며, 현재 탐방은 제2입구에서 시작해 공개된 구간을 따라 이동하는 방식이다.

만장굴은 2023년 12월 29일 입구 부근에서 낙석이 발생하면서 탐방이 전면 통제됐다. 이후 약 2년 5개월 동안 안전시설 보강과 탐방환경 개선 작업이 진행됐고 지난 5월 30일 다시 문을 열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만장굴을 찾는 목적도 다양하다. 단순히 제주 대표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해 온 관광객뿐 아니라 더위를 피해 가족 단위로 동굴을 찾는 경우도 많다. 4살 아이와 함께 만장굴을 찾은 한 탐방객은 "아이에게 용암동굴을 보여줄 수 있고 더위도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며 "조만간 한 번 더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재개방된 만장굴은 안전성과 탐방 편의성도 한층 개선됐다. 사업비 121억원이 투입된 종합 정비사업을 통해 낙석 위험이 있는 구간과 입구 상부의 안전시설이 보강됐고 동굴 진입 계단의 난간도 정비됐다. 동굴 내부에는 관람 데크가 새롭게 설치됐다. 과거 울퉁불퉁한 바닥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면 이제는 데크를 따라 보다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조명도 달라졌다. 기존보다 밝기를 낮춘 친환경 LED 조명으로 교체해 동굴 내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살리고 이른바 '녹색 오염'을 줄일 수 있도록 했다. 탐방객 입장에서는 걷기가 편해졌고, 동굴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분위기도 한층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된 셈이다.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 벽면 곳곳에서 용암이 흘렀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용암선반과 용암유선, 용암종유, 용암표석 등은 수십만 년 전 뜨거운 용암이 동굴을 만들던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공개 구간 끝에서 만나는 용암석주는 만장굴 탐방의 백미로 꼽힌다. 천장에서 흘러내린 용암과 바닥에서 올라온 용암이 만나 만들어진 이 거대한 기둥은 약 7.6m 높이에 달한다. 거대한 동굴 공간과 검은 현무암 벽면 사이에 우뚝 솟은 용암석주를 마주하면 단순히 '시원한 동굴'에 들어왔다는 생각을 넘어 제주의 화산 역사를 직접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일출랜드 미천동굴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일출랜드 미천동굴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한림공원 속 세 개의 동굴…쌍용굴·협재굴·황금굴

제주 서부로 발길을 옮기면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한림공원에서도 독특한 동굴을 만날 수 있다.

한림공원 안에는 협재굴과 쌍용굴, 황금굴이 서로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동굴은 제주의 대표적인 용암동굴로 꼽히며, 소천굴과 함께 1971년 9월 천연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됐다. 쌍용굴은 약 400m 길이의 용암동굴로, 폭은 약 6m, 높이는 약 3m 규모다. 한라산 일대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동굴로, 협재굴과 함께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쌍용굴이 특히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일반적인 용암동굴과 다른 독특한 지질학적 특징 때문이다.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동굴이면서 동시에 석회동굴에서 나타나는 특징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동굴 내부에는 석순과 종유석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벽면에는 석회 성분이 덮여 있어 검고 거친 현무암으로 이뤄진 일반적인 용암동굴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쌍용굴은 여름철 더위를 피하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동굴 내부 온도는 연중 17~18도 안팎을 유지한다. 바깥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 한여름에는 시원한 공기가 느껴지고, 반대로 한겨울에는 외부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꼽힌다.

쌍용굴(쌍룡굴)은 황금굴, 소천굴, 만장굴과 더불어 제주도의 대표적인 용암동굴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쌍용굴(쌍룡굴)은 황금굴, 소천굴, 만장굴과 더불어 제주도의 대표적인 용암동굴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쌍용굴과 이어지는 협재굴 역시 한림공원의 대표적인 동굴이다. 협재굴은 1981년 처음 일반에 공개된 이후 한림공원의 동굴 관광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두 동굴은 가까이 붙어 있지만 내부에서 느껴지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협재굴과 쌍용굴을 함께 둘러보면 같은 화산활동에서 비롯된 동굴이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지질학적 특징을 갖게 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협재굴과 쌍용굴 사이에는 황금굴도 자리하고 있다. 황금굴 역시 협재굴·쌍용굴과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굴이지만 현재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미천굴, 동굴과 지상공간 동시 '만끽'

제주 동쪽으로 이동하면 미천굴도 만날 수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에 자리한 미천굴은 천연 용암동굴로, 일출랜드 안에 자리하고 있다. 미천굴의 매력은 동굴과 지상 공간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지상과 확연히 다른 서늘한 공기가 느껴진다. 어둡고 좁은 공간을 따라 이동하며 제주의 화산 지질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굴 탐방을 마친 뒤에는 지상으로 나와 잔디광장과 수변공원, 야자수 산책로 등을 거닐 수 있다.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제주 토종 식물과 꽃을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어 동굴 하나만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여행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특히 한여름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 장시간 야외활동을 하는 것보다 서늘한 동굴과 녹음이 어우러진 공간을 번갈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협재굴은 쌍용굴, 만장굴 등과 더불어 제주도의 대표적인 용암동굴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협재굴은 쌍용굴, 만장굴 등과 더불어 제주도의 대표적인 용암동굴이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피서지'서 '화산의 시간'으로

제주의 동굴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여름철 시원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주는 화산섬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용암이 흐르고 굳는 과정에서 수많은 동굴이 형성됐다. 동굴 내부의 벽과 천장, 바닥에는 당시 용암이 흘렀던 방향과 속도, 온도 등을 짐작하게 하는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다. 만장굴의 용암선반이나 용암유선, 용암표석처럼 언뜻 보면 단순한 바위처럼 보이는 지형도 알고 보면 제주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질유산이다. 때문에 동굴 탐방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제주의 지질과 자연환경을 직접 체험하는 여행이기도 하다.

실제로 만장굴은 1946년 김녕국민학교 교사였던 부종휴와 학생들로 구성된 '꼬마 탐험대'가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학생들과 함께 어둠 속 동굴을 탐험했던 공간이 오늘날에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보존되며 관광객을 맞고 있는 셈이다. 다만 동굴은 일반적인 관광지와 달리 자연환경 보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이다. 특히 공개되지 않은 구간에는 다양한 동굴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탐방객의 접근이 제한된다. 10월 열리는 '2026 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서는 평소 출입이 제한된 만장굴 전 구간을 탐험하는 특별 프로그램도 마련될 예정이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지하세계까지 전문가와 함께 탐방하는 프로그램으로, 제주가 가진 동굴의 가치를 보다 가까이에서 체험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일보 진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