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봉 소설가
폭염 속에 휴가철을 맞이했다. 너무 더워서인지 계곡이나 해수욕장 같은 야외보다 실내에서 즐길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히 '호프', '스파이더맨', '오디세이' 같은 대작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면서 많은 사람이 영화관으로 향하고 있다.
나도 어쩌다 보니 세 편의 영화를 다 보게 됐는데, 저마다 다른 질감의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그중에서도 마지막에 본 '오디세이'는 마음에 이상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심지어 영화 초반부 30분은 졸았는데도, 영화를 다보고 나올 땐 무언가에 압도된 느낌을 받았다. 엄청난 스케일? 화려한 출연진? 그것보단 가장 근원적인 질문,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이것을 은유하는 서사 때문이었다. 역시 고전 중 고전. 진짜란 이런 것이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영화 후기를 찾아봤다. 어떤 커뮤니티에 유명한 평론가의 '오디세이' 평점이 올라와 있었다. 5점 만점에 3.5점. 오디세이를 볼 바엔 다른 영화를 두 번 보겠다는 한 줄 평까지. 의외였다. 그는 나도 좋아하는 평론가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사이트에 후기를 살펴보는데 아까 그 평론가의 사진과 함께 오디세이 평점 4.5점이라는 글을 보았다. 다음도, 그다음도 그가 평점 4.5점을 줬고 영화를 극찬했다는 글이 이어졌다. 다시 가짜 평론으로 가 보았다. 그의 유명세 때문인지 가짜 평론의 조회수는 벌써 4천500회를 넘어가고 있었다. 평론가를 비판하는 댓글도 스크롤이 힘들 정도로 달려 있었다.
가짜가 진짜인 양 돌아다니는 게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AI까지 가세해 출처를 알 수 없는 글들이 넘쳐나는 탓에 요즘 문제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1614년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가 쓰지도 않은 '돈키호테' 속편이 먼저 세상에 나왔다. 아베야네다라는 가명을 쓴 누군가의 위작이었다. 이듬해 진짜 속편을 내며 세르반테스는 그 위작을 소설 안으로 불러들인다. 돈키호테는 위작에만 나오는 인물을 찾아가 공증인 앞에서 진술을 받아낸다. 당신이 만난 그자는 내가 아니라고.
가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진짜의 명성을 부싯돌 삼아 잠깐 불타오르긴 해도 관심이라는 연료가 떨어지면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진짜인 척해도 가짜는 시간 앞에 무릎 꿇는다. 반면, 진짜는 시간을 초월한다. 400년 전의 돈키호테도 그렇고, 3천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온 오디세이도 그렇다. 물론 진짜의 모습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원작은 각색되고 전해지는 방식도 달라진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영혼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진짜'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