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한국 반도체 비하인드] 이병철의 도쿄 선언

입력 2026-08-09 13: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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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이 1983년 2·8 도쿄선언 후 귀국하여 임원들에게 반도체 사업 추진 지시를 하고 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 참여를 발표하자 국내외 반응은 냉담했다.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병철 회장이 1983년 2·8 도쿄선언 후 귀국하여 임원들에게 반도체 사업 추진 지시를 하고 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 참여를 발표하자 국내외 반응은 냉담했다.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 73세의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은 메모리 반도체(VLSI) 사업 참여를 선언했다. 대한민국 반도체 신화의 출발이 된 '2·8 도쿄 선언'이다. 이 회장은 "1년간에 걸친 철저한 기초조사와 밤낮을 가리지 않은 연구와 검토 끝에 내린 힘겨운 결단"이라고 그 소회를 밝혔다.

이날 삼성은 1년 후인 1984년 3월 말까지 64KD램 양산 제1라인을 완성하겠다고 첫 제품 개발 생산 일정까지 밝혔다. 삼성 반도체사업부는 이 일정을 역산하여 제품 개발 스케줄을 잡고 전광석화 같은 속도전을 시작했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반도체 사업 참여는 자신의 "외로운 결단"이라고 밝혔지만, 역사적 사실은 이와는 좀 다르다. 전두환 정부는 이미 1981년 5월 '반도체공업 육성계획'을 수립해 놓고 기업들의 참여를 기다렸다. 당시 한국의 열악한 기술 수준, 연구인력 부족, 천문학적인 투자 규모, 세계수준과의 격차 등에 가위 눌려 누구도 사업 참여 엄두를 못 냈다.

보다 못한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의 대구공고 선배인 최순달 당시 한국전자기술연구소장을 체신부 장관으로 입각시킨다. 최순달 장관은 체신부의 교환기 납품권을 무기로 대기업 회장들에게 반도체 사업 참여를 '정중하게' 권유한 사실은 지난 호를 통해 소개한 바 있다.

도쿄선언 직후 삼성이 언론에 실은 반도체 광고. 반도체 사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이병철 회장은 정면 돌파를 선언한다. 이 광고는 반도체 산업에서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도쿄선언 직후 삼성이 언론에 실은 반도체 광고. 반도체 사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이병철 회장은 정면 돌파를 선언한다. 이 광고는 반도체 산업에서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이 발표되자 세간의 반응은 냉담했다. 삼성그룹 내부에서조차 "이 회장이 망하려고 작정했다", "기초 기술도 없으면서 무슨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가", "천문학적인 투자자금을 무슨 수로 조달한단 말인가"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인텔은 삼성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었고, 일본 미쓰비시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냈다.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사업이 실패해 삼성에 위기가 오면 취약한 국내 경제 전반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였다.

◆참모진 반대에도 사업 참여 결단

당시 삼성의 반도체 기술 수준은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LSI(고밀도 집적회로) 반제품을 들여와 가공·조립하는 초보적 단계였다. 삼성 비서실의 반도체 사업 타당성 보고서에 의하면 VLSI의 소규모 생산 라인 하나를 짓는 데만 무려 470억 원이 필요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액은 200억 원 수준이었다. 반도체 산업은 그룹 전체의 운명을 걸어도 감당하기 힘든 모험이었던 셈이다.

평소 이 회장은 비서실의 보고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합리적 경영자였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욕심나는 사업도 비서실의 타당성 검토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오면 미련 없이 포기했다. 그러나 반도체만큼은 달랐다. 그는 사업가적 안목으로 반도체의 성공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1983년 12월 12일 64KD램 개발 생산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는 이병철 회장. 2·8 도쿄선언을 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삼성은 64KD램 개발에 성공했다.
1983년 12월 12일 64KD램 개발 생산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는 이병철 회장. 2·8 도쿄선언을 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삼성은 64KD램 개발에 성공했다.

1982년 3월, 이 회장은 보스턴대학에서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이때 이건희 부회장과 함께 IBM, 휴렛팩커드(HP), 코닝 등 첨단 기술 현장을 둘러본 이 회장은 반도체가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1982년 10월, 반도체·컴퓨터사업 팀을 조직하여 사업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이 무렵 일본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전력투구했다. 문제는 기술이었다. 당시 반도체의 선두주자는 미국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첨단 기술 확보를 위해 수단 방법을 총동원했다. 1982년 6월 일본 전자기업 히다치와 미쓰비시 직원 6명이 미국 IBM의 기술정보를 빼내다 체포되었다. 일본 측은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무는 등 국제적 물의를 빚었다.

이 사건은 당시 메모리 반도체 산업 진출을 고심하던 삼성 경영진에도 큰 경각심을 주었다. 이 사건 직후 청와대를 방문한 이병철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과 반도체 사업 구상을 깊이 논의했다. 전 대통령은 이 회장에게 "히다치나 미쓰비시처럼 무리하게 기술 습득을 시도하다 화를 입는 것보다는, 첨단기술을 보유한 해외의 인재를 직접 스카우트하는 것이 고급 두뇌와 기술을 한꺼번에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조언했다.

대통령의 조언은 즉시 실행으로 옮겨졌다. 이 회장은 일본 NTT의 하마다 시게타카(濱田茂孝) 박사를 기술 자문으로 영입했다. 또 스탠포드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GE와 IBM 연구원을 거쳐 버클리대 교수로 재임 중이던 이임성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임성 박사의 지원으로 미국 반도체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로 꼽히던 이상준, 이일복, 이종길, 박용의 박사 등을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고급 두뇌들이 황무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반도체의 화려한 꽃을 피워 올리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비관할 때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했다.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기적은 전두환이라는 국가지도자의 결단과 기업가 이병철의 혜안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비관할 때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했다.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기적은 전두환이라는 국가지도자의 결단과 기업가 이병철의 혜안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2·8 도쿄 선언'으로 비판과 우려의 여론이 거세지자, 이병철 회장은 정면 돌파를 지시했다. 그 결과 1983년 3월 15일, 삼성그룹은 대한민국 산업사에 영원히 기록될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를 세상에 내놓았다.

"삼성은 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의 자연적 조건에 적합하면서 부가가치가 높고 고도기술을 요하는 제품 개발이 필요했다. 그것만이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제2의 도약을 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해 첨단 반도체 산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중략) 이런 반도체 산업을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국가지도자의 결단과 기업가의 혜안

이 발표문은 단순한 기업 차원의 홍보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사를 혁명적으로 뒤바꾸는 국가적 비전의 제시였다. 이후 삼성은 미국 마이크론 사로부터 64KD램 설계 기술을 도입하고, 일본 샤프 사로부터 CMOS 공정 기술과 16KS램 기술을 도입하여 도약의 기반을 다졌다.

이병철 회장이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참여를 선언한 지 불과 9개월 만인 1983년 11월, 삼성은 세계 3번째로 64KD램 개발에 전격 성공했다. 무모한 과욕이라 비웃던 세간의 평가를 단숨에 뒤엎은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의 씨앗이 거목으로 자라나, 도쿄 선언 10년 후인 1994년, 삼성전자는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위의 왕좌에 오르게 된다.

대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기술도 자본도 없던 그 시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 대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국가 지도자의 결단과 기업가의 혜안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실로부터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특별보고를 받고 반도체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제2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두 차례나 "우리의 선진국 진입 여부는 반도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국무위원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 협력하라"라고 선언했다. 반도체산업에 대한 대통령의 독려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출발의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병철 회장은 참모진의 비관적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사업가로서의 통찰력으로 반도체 성공 가능성을 확신한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비관하던 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이러한 지도자와 기업가의 결단이 어우러져 대한민국은 반도체로 먹고 사는 나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팬앤드마이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