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지키지 위해 지지 않기 위해
김세희 지음/생각의 힘 펴냄
검사의 직접 수사 권한과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70여 년간 이어져 온 형사사법 체계가 전면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정부와 여당은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해 '검찰개혁'의 완성을 이루겠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와 범죄 피해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가 사라지면서 부실 수사를 바로잡을 마지막 안전장치가 사실상 없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가 충분한 검증과 보완 없이 시행될 경우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그 과정에서 발생할 사회적 비용은 결국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살인·성범죄처럼 초기 수사가 중요한 강력 범죄에서 수사가 미진할 경우 피해자 보호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를 비롯해 여성 및 피해자 단체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두고 피해자 보호가 약화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해당 사건은 경찰 수사 초기 '묻지 마 폭행'으로 알려졌다가 검찰의 보완 수사 과정에서 '성폭행 목적 범행'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결국 법과 제도의 목적은 사람을 지키는 데 있다. 물론 법이 모든 피해를 원상회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법을 집행하는 한 사람의 태도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누군가의 말을 믿고, 함께 분노하고, 혼자 싸우게 두지 않는 행위는 제도라는 시스템 안에서 연대를 만든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수사 검사였던 김세희 전 성폭력 전담 검사는 첫 신간을 통해 사건 너머의 피해자·피의자와 검찰청 사람들, 그리고 15년간 검사로 살아온 자신의 시간을 기록했다.
2010년 검사로 임관해 1만9천500건의 형사사건을 처리해온 저자는 사건을 판단하며 망설였던 순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으로 사건들을 기억한다. 책에는 평범한 국민들이 살아가는 집과 학교, 골목과 직장, 가정 안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담겨있다. 그중에서도 친족 성폭력 피해자, 아동·청소년, 장애인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처럼 법의 보호가 절실하지만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말하기 어려웠던 이들이 중심에 있다.
가정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양가감정, 가해자와의 관계 유지를 위한 가족들의 회유 등으로 진술 자체의 어려움을 겪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부터 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자신의 피해를 법률적 언어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 자체를 의심받기도 하고, 일부 아동·청소년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이 범죄라고 인지하지 못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피해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처럼 법정 밖 세상에는 재판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쉽지 않은 사건들이 허다하다. 저자는 사건의 법적 처리 후에 이어질 피해자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평안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하고 마지막까지 목소리와 마음을 들어왔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꾸짖어준 저자에게 훗날 "쓰러진 나를 대신해 다섯 평 검사실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줘서 감사하다"라는 편지를 남겼다. 또 그는 김 전 검사에 대해 "피해자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조금의 억울함도 없도록 끝까지 맞서준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검사로서뿐만 아니라 엄마로서, 한 사람으로서 겪은 성장과 이별도 진솔하게 풀어냈다. 현재 그는 15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변호사로 새롭게 출발했다. 평범한 검사로서 평범한 국민들의 사건을 맡아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그의 고백은, 제도라는 창을 통해서는 다 헤아리지 못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책임을 돌아보게 한다. 나아가 제도가 바뀌더라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사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 한번 되짚게 한다. 412쪽, 1만9천8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