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 백남준, 데이터 고속도로를 예언한 예술가

입력 2026-08-14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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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Photograph by Elliott Erwitt / Magnum
도판: Photograph by Elliott Erwitt / Magnum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예술가는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자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위대한 예술가는 그 누구보다 먼저 다가올 시대를 직관한다. 백남준(1932-2006)은 바로 그런 예술가였다. 그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한 데에만 있지 않다. 그는 오늘날의 초고속 정보통신망과 네트워크 사회를 누구보다 먼저 예견하고, 이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제시한 인물이었다.

1974년 백남준은 록펠러재단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전자초고속도로'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당시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는 대중화되지 않았고, 월드와이드웹(WWW)은 등장하기 한참 전이었다.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ARPANET) 등은 군사와 연구기관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기술이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자적으로 연결된 사회'는 현실보다 공상과학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백남준은 전혀 다른 미래를 바라보았다. 당대 물리학자 및 연구원들과 폭넓게 교류하던 그는 기술이 가져올 문명과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직관적으로 간파했다. 광섬유와 위성 통신, 레이저 기반의 정보 전송 기술이 결합되어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전자 네트워크로 연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이러한 전자초고속도로의 건설은 20세기의 고속도로 건설이나 달 착륙 계획에 버금가는 거대한 사회적, 국가적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의 통찰은 1990년대 미국 정부가 추진한 '정보 초고속도로' 구상보다 약 20년 앞선 것이었다. 오늘날 초고속 인터넷과 글로벌 데이터 네트워크가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통찰은 놀라울 만큼 정확했다.

오늘날 우리는 광섬유 인터넷을 통해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시청하며, 화상회의를 통해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협업한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영상과 음악을 즉시 전달하고, SNS는 수십억 명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한다. 정보와 영상, 문화가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오늘의 모습은 백남준이 반세기 전에 그려낸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 역시 이러한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미디어로 자리 잡으며 그의 비전을 한층 확장하고 있다.

백남준은 이러한 미래를 글로만 남기지 않고 자신의 예술 작품으로 구현했다. 1995년 제작한 《전자초고속도로》는 미국 지도를 형형색색의 네온과 수백 대의 텔레비전 모니터로 구성한 대형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미국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더 이상 철도나 자동차 도로가 아니라 전자 신호와 영상, 그리고 정보의 흐름이다. 국토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와 이미지가 순환하는 네트워크 공간으로 재해석된다. 백남준은 산업사회의 공간 개념이 정보사회의 네트워크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입증해 보였다.

백남준에게 텔레비전과 미디어는 단순한 영상 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래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언어였으며,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새로운 소통의 매체였다. 산업혁명 시대의 철도와 고속도로가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켰다면, 정보화 시대의 전자초고속도로는 이미지와 데이터, 지식과 문화를 이동시키는 새로운 문명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