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나는 우리나라 축구를 거의 안 본다. 못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본선은 16강부터 본다. 16강부터가 진검승부(眞劍勝負)다. 이번 월드컵도 우리나라 경기는 하이라이트만 봤다. 우리나라가 32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월드컵 개막 시점에서 우리나라 피파 랭킹은 25위였다. 25위가 32강에 오르지 못할 수 있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은 아니다. 여론은 부패한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를 감독으로 뽑았고, 무능한 감독 때문에 32강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홍명보의 축구 인생에는 세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은 1996년 아시안컵이다. 이란과의 8강전에서 6대2로 패하자 선수들의 태업(怠業) 의혹이 제기됐다. 홍명보가 중심이 된 사조직 '열하나회'와 박종환 감독 간 갈등이 드러났다. 결국 박종환 감독은 물러나고, 홍명보의 K대 선배인 차범근이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됐다.
두 번째 사건은 극적(?)이다.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 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라커룸에 왔다. 홍명보는 대통령에게 후배들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다. 나흘 뒤 월드컵 16강 진출 선수들에게 체육요원 편입 혜택이 주어졌다. 김남일, 박지성, 설기현, 송종국, 안정환, 이영표, 이천수, 차두리, 최태욱, 현영민이 혜택을 받았다. 그 후 박지성과 이영표는 'PSV'로, 송종국은 '페예노르트'로, 이천수는 '레알 소시에다드'로, 김남일은 '엑셀시오르'로, 차두리는 '레버쿠젠'으로 갔다.
세 번째 사건은 감동적(?)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박주영의 병역 회피 논란이 불거졌다. 홍명보는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발탁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주영이 군대를 안 간다고 하면, 제가 대신 간다고 말씀드리러 나왔습니다." 박주영은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군대에 가지 않게 됐다.
홍명보는 언제나 총대를 멨다. 이를 통해 '형님 리더십'을 구축했다. 아무나 총대를 못 멘다. 속된 말로 말발이 먹혀야 한다. 홍명보는 우리나라 축구계의 성골(聖骨)이다. K대 출신, 2002년 월드컵 4강 주역, 일본·미국 리그 경험, 20세·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이라는 경력이 있다. 2022년, 2023년에는 K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국내파와 해외파 선수들을 아우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내 감독이다.
홍명보는 우리나라 축구계의 내부자(insider) 중 내부자였다. 박힌 돌이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해외파 선수들이 사실상 내부자가 됐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 김민재, 손흥민, 이강인은 홍명보의 아이들이 아니다. 진 빚이 없다. 이들은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다. 국내 축구 시스템과도 거리가 있다. 그래서 말발이 안 먹힌다. 홍명보도 이 상황을 알았던 것 같다. 그는 2024년 7월 대표팀 감독직을 맡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버렸다"고 했다.
대한축구협회장 최용수, 부회장 안정환, 감독 이영표, 코치 설기현, 박지성, 이천수는 어떤가? 이들은 2002년 월드컵 4강 세대다. 홍명보와 동시대 인물들이다. 이들이 대한축구협회를 접수해도 내부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내부자가 바뀔 뿐이다. 영화 '신세계'에서 이자성이 정청의 자리를 차지한 것과 같다. 이들도 성적이 나쁘면 청문회에 불려 나가 "왜 졌어요?"라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받을 것이다.
구성원 일부가 바뀐다고 조직이 발전하지는 않는다. 학습하는 조직만이 성장한다. 개인의 지식과 경험이 조직에 쌓여야 성과가 난다. 내부자와 외부자(outsider)가 화학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좋은 조직은 구성원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 사람이 빠져나가면 다른 사람이 금방 구멍을 메운다. '뎁스'(depth)가 좋다. 이런 조직이 꾸준히 성과를 낸다.
끊임없이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몰아내는 조직은 학습하지 못한다.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해외파 선수들만으로 대표팀을 꾸리거나, 유명한 외국 감독을 데려와 성적을 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축구가 발전한 것은 아니다. 내부자의 역량을 키우면서 외부자의 경험을 수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감, 공정, 관용(寬容), 인내가 필요하다. 쓰리백이냐 포백이냐는 그다음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