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취임한 추경호 대구시장이 발끈했다. SK가 2년여 전 대구 수성알파시티에 짓겠다고 한 AI 데이터센터 건립 취소 통보를 하자, 지난 7월 23일 SK리츠 대표 등 관계자들을 만나 항의한 것.
◆뒤늦게 드러난 투자 취소
2023년 12월 4일 대구시와 SK는 수성알파시티에 40MW(메가와트) 규모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하지만 SK는 데이터센터 투자 환경과 내부 경영 여건 변화를 이유로 2025년 상반기부터 사업을 사실상 중단했고, 올해 1월 대구시에 중단 방침을 통보했다.
애초 전임 홍준표 시장 시기에 파행 조짐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으나, 이러는 중 홍 시장은 대권 도전을 위해 2025년 4월 11일 퇴임했다. 이어 김정기 권한대행(행정부시장) 시기에 받은 SK의 사업 중단 통보가 수개월 묵혀졌다가 후임 추 시장이 항의했다는 소식으로 시민들에게 알려진 맥락이다.
안 그래도 이재명 정부 3대 메가프로젝트에서 소외됐다는 분위기가 짙은 지역에서 느낄 실망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이재명 정부 출범 전 대구를 미래산업 거점으로 도약시킨다는 계획을 약속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MOU가 투자 확정?
그런데 이 약속의 매개체인 MOU는 확약을 뜻하는 게 아니기에, 즉 취소 여지가 존재하는 약속이기에 시쳇말로 '뒤통수를 쳤다, 맞았다'는 표현을 붙이긴 어렵다.
MOU(양해각서, Memorandum of Understanding)는 정식 계약 전 협력 의사와 기본 조건을 확인하는 문서다. 문제는 협약식이 열리는 순간 투자 가능성이 투자 확정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최용민 무역통상연구소장은 올해 7월 '양해각서의 법적 구속력과 신뢰이익'(한국무역신문 기고)에서 "적지 않은 경우 당초 화려했던 행사와는 달리 MOU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물거품처럼 사라진다"고 표현했다. MOU 당사자의 체급과 행사에 참석한 인물의 인지도, 언론 보도량 등과 별개로 구체적인 실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꽤 있다는 얘기다.
물론 MOU에 법적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최 소장은 문서 제목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강제 이행 의무와 실행 시기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면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정식 계약 체결을 전제로 한다거나, 정식 계약 전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조항을 넣었다면 협력 의사를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시민들은 짧은 기사 몇 줄만 갖고 제대로 알기 힘들다. 언론도 당사자들이 문서 전문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
◆악수만 남기고 사라진 투자
MOU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는 수시로 나온다. 2024년 2월 충남도·아산시와 중국 반도체 소재기업 강풍전자는 아산 음봉 외국인투자지역 예정지에 5천300만달러, 당시 환율로 약 700억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초고순도 부품 생산공장을 지어 200명을 신규 채용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납품한다는 계획이었다. 충남도가 그해 첫 외자 유치 성과로 홍보한 사례다.
그러나 1년여 뒤 투자 무산 사실이 드러났다. 공장 예정지는 아직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이었고, 충남도와 아산시가 기업에 제공키로 한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번복한 사례라기보다는, 지자체가 협약의 전제조건을 마련하지 못한 채 성급히 투자 유치부터 발표한 경우다.
또 2023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체결한 박물관·국제학교·게임특화단지 관련 MOU들도 1년 뒤까지 후속 합의나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자체와 공공기관들이 평소 앞다퉈 MOU 체결 건수와 협약액을 투자 유치 성과로 내세우는 경향이 짙지만, 기업의 변심과 지자체의 준비·관리 부족 탓에 본계약·착공·가동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지역경제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투자 유치 성적표를 바꾸자
지자체가 MOU를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체장과 기업인이 악수하는 사진, 거액의 투자금 유치, 대규모 일자리 창출 전망을 즉시 성과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부지 확보와 인·허가, 자금 조달, 착공과 가동은 통상 몇 년 뒤에야 판가름 난다. 가능성은 현 단체장의 업적이 되고, 무산의 책임은 다음 임기로 넘기기 쉽다.
따라서 지자체의 투자 유치 성적표를 단계별로 나눠 체크할 필요가 있다. 비구속적 MOU, 구속력 있는 투자계약, 부지 확보, 인·허가, 착공·설비 반입, 가동·고용 발생 등의 수준을 구분해 따져야 한다. MOU 금액은 '투자 유치 완료액'이 아니라 '협상 중 잠재투자액'으로 별도 표시하는 건 어떨까.
지자체를 견제하라고 둔 지방의회는 협약별 진행률과 무산 사유, 투입된 공공비용 및 환수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는 협약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협약식은 미미한 시작이다. 이후 여러 단계를 통과해야 비로소 지역경제의 자산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