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수협 경매사 출신 '해남(海男)' 손명수 씨

입력 2026-07-22 15:05:13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피와 땀 가치 일깨워준 '정직한 일'"

손명수 씨가 구룡포 앞바다에서 채취한 천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손명수 씨가 구룡포 앞바다에서 채취한 천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지난 20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30대 후반 한 남성이 한 방파제 앞에서 이날 바다에서 채취한 성게를 손질하고 있다. 포항에서 유일한 '해남(海男)' 손명수(39) 씨다.

구룡포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해녀의 아들이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의 속담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온 해녀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며 자랐다. 그는 수협 경매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2022년부터 고향 땅에서 어머니의 직업을 잇고 있다.

손 씨는 "가업을 잇겠다거나 어업유산을 계승하겠다는 식의 거창한 뜻을 품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노동의 가치'를 느끼며 일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오래오래 이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수협 직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이 일을 시작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대학 졸업 후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이 일을 하기 직전 직업은 수협 경매사였다. 수협에 입사해 1년 정도 은행 업무를 봤고, 4년 정도는 경매사로 일했다.

경매사 업무가 보수는 높았지만 기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경매사를 하다보면 어판장 규율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고함을 지르고 때론 욕설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아버지뻘인 60, 70대 중매인 아저씨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너무 힘들고 싫었다.

결과적으로는 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른들께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예의 없는 행동을 직장 밖에서도 하고 있는 거였다. '진짜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협을 나오게 됐고 '해남'의 길을 걷게 됐다.

손명수 씨가 구룡포 앞바다에서 채취한 성게를 손질하고 있다. 본인 제공
손명수 씨가 구룡포 앞바다에서 채취한 성게를 손질하고 있다. 본인 제공

-어머니가 50년 경력의 해녀다. 어머니의 반대는 없었나.

▶어머니의 반대는 정말 심했다. 일이 너무나도 고되고 위험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어머니를 설득한 것 같다. "1년 정도 해본 뒤 돈이 안 되면 바로 그만두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큰 반대에도 이 일을 시작한 건, 그만큼 바다가 좋았기 때문이다. 경매사로 일하던 마지막 1년 동안은 향후 진로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수산업 분야에 계속 남아야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결론은 '수산업 분야에 남아야겠다'는 거였다. 젊은 시절 취미로 스쿠버다이빙을 할 정도로 바다가 좋았고, 수협을 나온 뒤 프리다이빙을 배우면서 뜻을 굳히게 됐다.

-어머니 말씀처럼 이 일이 많이 위험하다고 느끼나.

▶그렇다.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구룡포 앞바다에서 80대 해녀분이 작업 중 심정지가 온 걸 목격했다. 마침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취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자격증 준비를 하며 배운 게 몸에 남아 있었는지, 해녀로 일하는 누나랑 그분을 구조해 심폐소생술로 살릴 수 있었다.

그밖에도 작업에 나간 해녀 3명이 일사병으로 동시에 쓰러진 일도 있었고. 작업 중이던 해녀가 그물에 걸려 위험에 빠진 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다. 인근 지역에선 해녀분이 작업용 보트에서 감전 사고로 돌아가시기도 했다. 이처럼 주변에서 사고 이야기가 자주 들릴 정도로 위험한 직업이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이뤄지나.

▶대다수 사람들은 해녀 일에 대해 물질은 고되지만 나머지 시간은 자유로울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실상은 개인 시간이 거의 없는 직업이다. 성수기엔 물질부터 해산물 손질까지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는 날도 많다. 게다가 휴일도 따로 없다. 파고가 높은 날이 쉬는 날이다. 눈이나 비는 작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풍랑이 거친 겨울철엔 그나마 쉬는 날이 많은 편이다.

보통 오전 5시쯤 일어난다. 작업 준비와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그날 작업할 바다로 이동해 물에 들어가는데, 시간은 오전 7~8시 정도다. 이후 네다섯 시간쯤 작업을 하고 나와서는 채취한 해산물 손질작업을 한다. 점심은 편의점 음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작업장에서 해결한다.

이 일이 끝나는 시각은 대략 오후 6시 전후다. 귀가 후 씻고 장비를 정리한 뒤 식사를 마치면 오후 8시가 넘는다. 그럼 곧 잘 시간이다. 개인 시간이 하루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손명수 씨가 구룡포 앞바다에서 잠수장비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손명수 씨가 구룡포 앞바다에서 잠수장비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본 일 중에는 가장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바다가 심리적으로 편한데다 성과도 그만큼 따라 와준다는 점에서다. 이 일을 시작한지 1년쯤 지났을 무렵, '아! 내가 다른 분들보다 많이 잘 하는구나'하는 걸 느끼게 됐다. 그러다보니 일에 대한 만족도도 자연스레 높아지게 됐다.

'노동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도 이 직업의 매력이다. 일을 하고 노력하는 만큼 수익이 따라온다. 물론 개인별로 차이가 있고 어떤 날엔 작업량이 기대에 못 미칠 때도 있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꾸준히 일을 하면 그만큼의 수익은 보장된다. '정직한 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가치를 주변에서 인정을 해준다는 점에서도 큰 보람을 느낀다.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이다.

-주변에서 인정해준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그동안 해녀 선배들 대다수는 단체 활동의 거의 하지 않았다. 수산업경영인연합회 등의 단체가 남성 위주인데다 나잠어업을 하는 해녀들이 들어가더라도 누릴 게 거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같은 수산업계 종사자들도 해녀들의 활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해녀들의 발언권이 거의 없다는 점도 많이 아쉬웠다.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해녀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에서 2023년 뜻이 맞는 선배 해녀들과 경북해녀협회를 출범했다. 저는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었다. 협회 출범 이후 대외 활동이 늘면서 지금은 많은 수산업계 분들이 해녀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됐다. 2024년 구룡포 연안이 해양보호구역에 포함된 것도 작은 성과다.

-정책적으로 아쉬운 점은 없나.

▶귀어에 도전하려는 청년을 위한 실질적 지원책이 좀 아쉽다. 해녀·해남을 꿈꾸며 어촌을 찾는 청년들은 생각보다 많다. 제가 상담을 한 것만 해도 여러 건이다. 하지만 다들 몇 달 동안 월세살이를 하며 일을 배우다 그만 포기하고 떠난다.

귀어 창업 자금 대출도 어선구입이 아닌 이상 받기 힘든 게 현실이다. 어촌계 가입도 1년 이상을 거주해야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버티고 싶어도 생계유지가 안 되는 거다. 지역 연고 없는 이들이 정착할 때까지 2~3년 정도 주거 문제만이라도 해결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가업을 잇겠다거나 어업유산을 계승하겠다는 식의 거창한 뜻을 품고 시작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 쉬는 날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필라테스를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한 또 다른 전제조건은 어자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어자원 고갈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잠수기 어선의 불법 조업 탓이다.

잠수기 어선은 법적으로 수심 15m 밖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작업 중 잠수부를 코 앞에서 마주 정도로 불법조업이 빈번하다. 잠수기 어선의 불법조업은 '싹쓸이'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마을 어장을 황폐화시킨다. 관계기관이 좀 더 관심을 갖고 해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