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를 무너뜨린 범인 [가스인라이팅]

입력 2026-07-16 12: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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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경영난으로 지난해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던 홈플러스가 운영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13일부터 전 점포 휴업에 돌입했다. 폐업이 코앞이다. 민주당은 홈플러스의 붕괴를 두고 국회 청문회를 통해 진상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노조는 대주주인 사모펀드에 책임을 묻는 대규모 투쟁을 예고했다. 다른 이해관계자도 앞다퉈 서로 책임 씌우기에 혈안이 돼 있다.

홈플러스 사태의 원인을 두고 각계의 진단은 엇갈린다. 우선 노동계는 대주주인 MBK와 메리츠증권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에 이들 기업이 7조 원이 넘는 막대한 빚을 내 홈플러스를 무리하게 인수했고 그 후 점포 매각과 배당금 회수에만 급급했던 것이 이 사태의 화근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강성 노조에 이끌려 다니며 유연한 인력 재배치나 구조조정조차 제때 할 수 없었던 환경을 파국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한다. 양쪽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홈플러스가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가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원천적으로 제약했다는 점이다.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정부의 규제 족쇄 아래에서 오늘날 한국의 대형마트 산업 전체가 고사 직전의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해 월 2회 의무휴업일 지정과 심야 영업시간 제한이라는 촘촘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는 과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실제 시장에서 작동한 방식은 전혀 달랐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진행한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 시 '전통시장을 방문한다'는 소비자 비율은 고작 8.3%에 그쳤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이 4년간 서울시의 대형마트 66개 주변 카드결제액을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보다 휴무하는 일요일에 오히려 소상공인 매출이 1.7% 감소했다고 한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만든 규제가 정작 전통시장은 살리지도 못한 채 시민의 삶에 불편함만 더한 것이었다.

이런 탁상공론식 규제의 사각지대 속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한 건 다름 아닌 쿠팡과 같은 온라인 이커머스 기업이었다. 이들은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팔다리가 묶인 틈을 타 '새벽배송'을 무기로 무섭게 몸집을 키웠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영업시간 제한까지 더해지자 오프라인 소비 수요는 고스란히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졌다.

2020년만 해도 대형마트 3사의 매출 합계는 27.3조 원으로 쿠팡 13.3조 원의 두 배가 넘었는데 그 후 4년 간 격변이 일어났다. 대형마트 3사 매출이 28조 원대에 갇혀 있는 사이 수요를 흡수한 쿠팡은 41조 원 수준까지 성장했다. 한때 절반 수준이었던 쿠팡 매출이 이제는 대형마트 3사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커진 것이다.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낡은 규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며 대형마트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 시켰고 대체재인 거대 이커머스가 시장 주도권을 독식하는 자양분이 되어준 셈이다.

정부는 홈플러스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자 긴급히 TF를 구성하여 회생 절차를 지원했고 4천400억 원 규모의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파산이 가시화된 상황에서도 정부여당은 여전히 기업에 대한 책임론만 강조하거나 노동조합의 민원을 달래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에만 골몰하고 있을 뿐 사태를 키운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수명이 다해가는 기업에 뒤늦게 인공호흡기를 붙여주는 것이 아니다. 변화한 유통 환경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온·오프라인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건 시장과 그 시장의 진짜 주인인 소비자다. 정부가 할 일은 규제로 기업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박성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박성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박성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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