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을 탄핵하는 방법 [가스인라이팅]

입력 2026-07-13 21: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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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은 4년 동안 해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교육감은 탄핵 심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철밥통 중 철밥통인데 교육감 선거에선 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유권자 대다수가 후보의 이름조차 모른 채 표를 던진다. 전화 여론조사에서 후보 이름 조차 "모르겠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 일이 흔하다.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 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린다. 시민이 교육 수장을 직접 고른다는 발상은 오랜 임명 시대를 끝낸 진일보로 칭송 받았다. 이제 임명제로 가자는 소리는 권위주의로의 회귀처럼 들린다. 직접 뽑을수록 더 민주적이고 더 책임 있는 교육이 된다는 믿음은 좀처럼 의심 받지 않는다.

그런데 책임이란 선출된 권력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그를 끌어내릴 수단이 있어야 비로소 작용한다. 교육감은 제어할 방법이 없다. 선거는 4년에 한 번 심판할 기회를 주는 듯 보이지만 누가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는 유권자에게 심판은 너무 어려운 영역이다. 막대한 권한만 넘어가고 그 권한의 사용처를 따져 물을 고리는 끊긴 셈이다.

이 공백을 선거 제도로 메우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공영 토론을 늘리고 후보를 단일화하고 선거 비용을 보전해 줬다. 하지만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후보들은 여전히 수십조 원에 이르는 교육 곳간을 어떻게 나눠 줄 지로 경쟁하고 유권자는 여전히 기표소에서 그 이름을 처음 보게 된다. 형식을 아무리 다듬어도 없던 책임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교육 자치의 본산으로 꼽히는 미국의 사례를 보자. 50개 주 가운데 교육감을 주민이 직접 뽑는 곳은 12곳에 불과하다. 1920년대에는 70% 넘는 주가 직선제였지만 한 세기에 걸쳐 그 비중은 24%까지 줄었다. 대부분 주에서는 주지사나 교육위원회가 교육감을 임명하고 일을 못하면 해임한다.

한국이 택해야 할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중앙 정부가 아니라 주민이 직접 뽑은 광역자치단체장이 교육감을 임명하고 그 성패를 함께 짊어지게 하면 유권자는 교육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물을 수 있다. 이것이 덜 민주적이라는 반박이 들어올 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핵심은 표를 던지는 행위가 아니라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는 능력이며 내 손으로 뽑은 광역자치단체장에게 교육 책임을 따져 묻는 쪽이 훨씬 더 민주적이다.

이 무책임한 교육감 선거의 청구서는 고스란히 공동체의 미래에게 날아온다.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교실의 규칙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혼란을 감당해야 하는 건 결국 유권자다. 영혼 없이 투표에 동참한 대중은 자신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매번 같은 파멸의 행보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에 민주주의를 적용한 게 아니라 책임을 지운 것이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기표소 도장이 아니라 잘못된 결정 앞에서 "이건 당신의 책임"이라고 가리킬 수 있는 한 사람을 갖는 데 있다. 끌어내릴 수 있는 사람에게 교육을 맡기는 것은 후퇴가 아니라 더 정직한 민주주의다.

김민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김민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김민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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