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한윤조] 엄미새와 전업자녀

입력 2026-07-09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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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조 논설위원
한윤조 논설위원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엄미새'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엄마에 미친 사람'을 뜻하는 이 거친 표현은, 역설적이게도 엄마와 여행을 떠나고 쇼핑을 즐기며 일상을 공유하는 젊은 층을 친근하게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과거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녀를 '마마보이'나 '마마걸'이라 부르며 독립성 결여(缺如)를 꼬집는 놀림조였던 것과 달리, '엄미새'는 자녀 본인이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유대감(紐帶感)을 자랑스럽게 선언하는 표현에 가깝다고 한다.

이런 가족 밀착형 트렌드의 배경에는 젊은 세대의 달라진 가치관이 자리한다. 다수와 얕은 친분을 만들기보다는 소수와 깊은 관계에 집중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청년층에서 연애하지 않는 비율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비혼 청년의 상당수가 자발적 비연애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삶에서 굳이 갖추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연인·연애를 상위에 꼽기도 한다. 과거 연인이 담당했던 정서적 지지와 공감, 일상 공유의 역할을 이제는 나를 가장 잘 아는 가족이 대신하는 셈이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는 일정 정도의 피로감이 따른다. 시간과 비용,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연애나 타인과의 관계 맺기보다는 조건 없는 지지와 편안함을 주는 가족 안에서 정서적 밀착(密着)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을 마냥 훈훈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그 이면에는 청년들이 마주한 팍팍한 주거 현실과 경제적 불안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 20대 청년층의 부모와 동거 비율은 OECD 평균을 크게 웃돌며, 독립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경제적 여건의 부족이다. 최근에는 부모와 함께 살며 청소, 요리 등 가사를 담당하고 생활비를 지원받는 '전업(專業)자녀'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부모 의존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 가족 구성원 간 역할을 나누는 새로운 경제적 공생 관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엄미새'나 '전업자녀' 현상은 청년들이 사회에서 겪는 불안을 완충해 줄 안전망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방증(傍證)한다. 취업 시장의 높은 문턱과 경기 침체, 사회의 날 선 평가 속에서 지친 청년들이 찾아낸 유일한 안식처가 가장 원초적인 단위의 사적 관계인 부모 품이라는 점은 서글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