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진 바 없는 단종의 용안, 어떻게 그려냈을까

입력 2026-07-07 11: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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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우리 옷을 그리다'
권오창 화가 기증 복식인물화 특별전
'정부표준영정' 단종 어진 비롯해
대한제국 황실 가족, 어린이 복식인물화와
실제 복식 등 총 121건 137점 전시

2021년 정부 표준영정 제100호로 지정된 단종 어진. 노산군으로 강봉되기 전,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15세 전후의 모습이다. 권오창 화가는 태조 어진의 얼굴 윤곽과 세조 어진 초본을 참고해 단종의 용안을 그렸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영인본이 전시된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2021년 정부 표준영정 제100호로 지정된 단종 어진. 노산군으로 강봉되기 전,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15세 전후의 모습이다. 권오창 화가는 태조 어진의 얼굴 윤곽과 세조 어진 초본을 참고해 단종의 용안을 그렸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영인본이 전시된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덕혜옹주의 예복 차림. 덕혜옹주의 흑백사진 속 모습과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 중인 실제 복식을 참고해 재현한 그림이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덕혜옹주의 예복 차림. 덕혜옹주의 흑백사진 속 모습과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 중인 실제 복식을 참고해 재현한 그림이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오방색 두루마기 복식인물화. 다섯가지 색을 두루 갖춘 옷에는 나쁜 기운을 막고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오방색 두루마기 복식인물화. 다섯가지 색을 두루 갖춘 옷에는 나쁜 기운을 막고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흑백사진 속 인물들이 색을 입고 비단 위에 화사하게 피어났다. 장수와 복을 빌며 옷에 한 땀 한 땀 수놓은 화려한 장식들은 섬세한 붓 끝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우리 옷을 그리다: 권오창 화백 기증 복식인물화'가 7일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지난해 동강(東江) 권오창 화가가 국립대구박물관에 기증한 복식인물화 155건 168점 중 일부를 선보이는 전시다.

권 화가는 반세기 가량 역사 속 인물과 전통 복식을 화폭에 되살려 온 인물화가다. 정부표준영정 100여 점 중 17점이 그의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기증한 복식인물화 72건 80점과 실제 복식 등 총 121건 137점이 공개됐다.

전시실에는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조선시대 태조와 단종, 영조, 철종, 고종의 어진을 빙 둘러 전시한 별도의 공간이 눈에 띈다.

2021년 제작해 정부표준영정 제100호로 지정된 단종 어진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기 전,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15세 전후의 모습이다.

단종의 경우 왕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린 기존 도사(圖寫) 작품이 없어, 추정해 그리는 추사(追寫) 방식으로 제작됐다. 권 화가는 태조 어진의 얼굴 윤곽과 세조 어진 초본을 참고해 단종의 용안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도 단종 초상화는 여러 점 있었지만 정부표준영정으로 지정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이외에 유일하게 곤룡포가 아닌 군복을 입은 철종의 어진을 비롯해 권 화가가 1999년, 127년 만에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 모사 작업을 할 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와 그가 남긴 작업일지도 함께 볼 수 있다.

1922년 일제강점기, 창덕궁 대조전에 모여 마지막으로 남긴 빛바랜 흑백사진을 바탕으로, 대한제국 황실 가족과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그린 복식인물화도 전시됐다.

가로 6m 크기의 '대한제국 황실 가족'은 당의와 대란치마 차림의 덕혜옹주, 영친왕비, 순정효황후, 황제의 예복인 통천관을 갖춘 순종, 홍색 곤룡포 차림의 영친왕, 시종관에게 안긴 이진 왕자가 순서대로 그려졌다.

특히 이 그림에서는 왕실 여성의 가장 높은 예복인 적의(翟衣)에서 꿩 무늬의 줄 수로 위계를 나눴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영친왕비는 9줄, 순정효황후는 12줄이 둘러져 있어, 의복을 통해 황후와 황태자비의 등급을 나타냈다.

권오창 화가가 1995년 그린
권오창 화가가 1995년 그린 '대한제국 황실가족'. 가로 6m, 세로 2m에 달하는 대작이다. 이연정 기자
국립대구박물관 전시실에 태조와 영조, 고종(오른쪽부터)의 어진이 걸려있다. 이연정 기자
국립대구박물관 전시실에 태조와 영조, 고종(오른쪽부터)의 어진이 걸려있다. 이연정 기자
어린이 복식인물화를 한 화면에 모아 완성한 가로 4m 대작
어린이 복식인물화를 한 화면에 모아 완성한 가로 4m 대작 '백진복도'가 전시돼있다. 이연정 기자
남자아이가 대여섯살까지 쓰던
남자아이가 대여섯살까지 쓰던 '호건'이 전시돼있다.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지혜롭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호랑이의 눈썹과 눈, 수염과 이빨, 귀를 수놓은 모자다. 이연정 기자
왕실과 반가의 남자아이가 관례를 치르기 전까지 입던 사규삼 차림의 복식인물화와, 실제 사규삼과 버선, 꽃신 등이 함께 전시돼있다. 이연정 기자
왕실과 반가의 남자아이가 관례를 치르기 전까지 입던 사규삼 차림의 복식인물화와, 실제 사규삼과 버선, 꽃신 등이 함께 전시돼있다. 이연정 기자

권 화가의 복식인물화는 조선 왕실을 넘어 여성과 어린이의 옷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 어린이 옷에 수(壽), 복(福) 글자를 새기거나 오방색을 사용하고, 몸통을 한 바퀴 휘감을만큼 고름을 길게 만든 것들이 모두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해 화제가 된 호랑이도 그 옛날 아이의 옷차림에 담겼다. 남자아이가 대여섯살 때까지 쓰던 호건에 호랑이의 눈썹과 눈, 수염과 이빨, 귀 등을 수놓아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자라고 나쁜 기운이 비켜가길 기원하는 바람을 담은 것. 전시에는 호건을 쓴 아이의 그림과 실제 호건을 나란히 놓아 이해도를 높였다.

이외에 100여 가지 어린이 복식을 한 화폭에 담은 가로 4m 대작 '백진복도(百珍服圖)', 백진복도의 제작 과정을 풀어낸 미디어아트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김혜원 국립대구박물관장은 "권 화가는 복식과 인물을 고증하기 위해 박물관과 학회를 수없이 다녔고, 특히 후손들의 얼굴을 면밀히 조사해 작품에 사실성을 덧붙였다"며 "복식사와 회화사 연구에서 귀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우리 옷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전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전시는 9월 27일까지 이어지며, 총 5차례의 '큐레이터와의 대화'를 비롯해 ▷연계 강연 '조선시대 관복, 초상화로 보다'(7월 31일) ▷작가와의 대화(8월 6일, 9월 3일)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자세한 일정은 국립대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