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동양화인가, 한국화인가?"

입력 2026-07-07 09: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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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문화의 속성은 물과 같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다가 구덩이를 만나면 그곳을 채우고, 다시 넘쳐서 흘러간다.'

간송미술관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한국 미술사 연구를 개척한 거장, 가헌(嘉軒) 최완수 선생의 문화론이다.

민족의 문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리저리 섞이고 다듬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리다. 하지만 강제로 구덩이의 물이 한꺼번에 버려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에게는 일제강점기가 바로 그런 단절과 왜곡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미술이라는 용어도 그 시기에 정착된 단어다. 그 이전까지는 '서화(書畫)', 즉 그림과 글씨로 통용됐다. 명칭의 왜곡은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본격화됐다. 당시 일제는 조선 화가들의 등용문이었던 이 공모전에서 우리의 서화를 '동양화'라는 이름으로 개편했다. '조선화'는 자주 의식을 고취할 것이고 '일본화'는 반발을 우려해 선택한 타율적 용어였다. 동시에 제국주의 슬로건을 밑바탕에 깐 문화적 장치이기도 했다.

이 역사의 잔재는 해방 이후에도 대학 강단과 미술계에 줄곧 이어졌다. 변화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1982년, 당시 정부가 관 주도의 '국전' 폐지를 발표하고 이듬해 민간 이관을 단행하면서 '한국화'라는 용어가 비로소 수면 위로 올랐다. 같은 해 지역 국립대학에 예술대학이 신설되고 한국화 전공이 만들어지면서 동양화와 한국화라는 명칭이 혼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대구에서는 이러한 전통 회화의 맥을 짚어보는 뜻깊은 두 전시가 동시에 열렸었다. 대구 간송미술관의 '추사의 그림 수업'과 대구미술관의 '서화무진' 전시다. 따로 열린 두 전시는 마치 두 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것처럼, 시대적 맥락을 잇고 연결돼있었다. 추사 김정희부터 현재 활동하는 작가까지 우리 그림의 계보를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대구미술관 전시 기획자는 "이대로 두면 한국화가 고사할 것 같았다"라며 기획 취지를 밝혔다. 전통의 소멸을 막으려는 절박함이 담긴 고백이다. 그래서인지 외지인들과 전문가들의 방문이 지속해서 이어졌다. 관광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미술관 전시는 새로운 호기심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많은 이들이 유럽으로 미술관 순례를 떠났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류 열풍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방문객 숫자가 이제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제 우리는 '동양화가 맞는가, 한국화가 맞는가?'라는 과거의 지정학적 담론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용어의 논쟁을 넘어, 우리 그림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세계화(世界畵)'로 나아가야 할 때다. 붓끝에서 시작된 우리의 정신과 미학이 물처럼 흘러 전 세계인의 마음을 채우는 시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