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김성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대통령의 말

입력 2026-07-09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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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돈안지유돈(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佛眼只有佛)." 조선 태조 이성계와 당대의 고승 무학대사 사이에 오간 법어로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어느 날 이성계는 대신들과 함께 무학대사를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다. 새 왕조의 유교적 질서를 세우려 했던 이성계는 불교계의 거두인 무학대사에게 말했다. "내가 보니 대사님 모습이 꼭 돼지처럼 생기셨습니다." 이어 "대사에게는 내가 무엇으로 보입니까?" 하고 묻자, 무학대사는 "전하께서는 제 눈에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뜻밖의 대답에 의아해진 이성계가 다시 물었다. "나는 대사를 돼지 같다고 했는데, 어찌 대사는 나를 부처 같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무학대사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입니다."

"천재는 천재가 알고, 위인은 위인이 발견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가슴에 품고 있는 깊은 통찰이다.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뛰어난 능력이나 가치는 이를 이해할 만한 안목과 깊이를 지닌 사람만이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성장하며 경험하고 배운 것, 그리고 현재의 지적·정신적 수준을 기준으로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결국 인간은 딱 자기 그릇의 크기만큼만 다른 사람을 담을 수 있고, 자기 시야의 넓이만큼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의 한계를 짚어주는 말이다.

얼마 전 대통령이 한 SNS에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는 법"이라는 글을 올렸다. 도대체 그가 말하는 부처는 누구이고 돼지는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만일 자신을 부처에, 다른 사람을 돼지에 비유한 것이라면 참으로 거만하고 교만한 태도이다. 반대로 자신을 돼지에 비유한 것이라면, 국민은 돼지 같은 대통령을 두었다는 뜻이 되니 얼마나 참담하고 불행한 노릇인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남긴 언사치고는 참으로 가볍고 경솔하다. 일개 무명의 필자도 말과 글을 공개할 때는 혹시 모를 오해와 갈등을 피하고자 늘 경계한다. 말 한마디의 무게와 파급력이 클수록 더 신중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다른 이들을 향한 비판과 찬사는 때로 고스란히 자기 고백이 된다.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 평가는 대상의 실체보다 평가하는 주체의 수준을 날카롭게 폭로하곤 한다. 이른바 속물(俗物)은 타인의 순수한 선의마저 제 수준으로 깎아내려 해석하지만, 훌륭한 인격을 지닌 이는 타인의 작은 성의와 성과에서도 위대함을 발견해 낸다. 결국 타인과 세상을 향한 자신의 모든 판단은,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시인하는 내면의 고백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지도자들의 최후는 대개 비극적이고 파멸적이었다. 최고 권력자의 사소한 감정 변화는 개인의 불행을 넘어, 수많은 국민의 운명과 국가의 흥망성쇠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순간의 분노와 감정에 치우쳐 대업을 그르친 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삼국시대 장비는 관우를 잃은 분노로 부하들을 가혹하게 매질하다가 그들에 의해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면서 촉한이 급격히 기울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초한지의 영웅 항우도 분노와 오만에 휩싸여 항복한 진나라 군사 20만 명을 생매장하며 민심을 잃고 만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술자리에서 격분을 참지 못하고 은인인 클레이토스를 살해한 후 평생을 죄책감과 정신적 황폐함 속에 보내다가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한 국가를 이끄는 대통령의 정서적 불안정은 단순한 성격 결함에서 끝나지 않고 국가 전체를 흔드는 치명적인 위험 요소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지도자는 이성적 판단력을 상실하여 주변의 직언을 멀리하고 감언이설만 가까이하게 된다. 그 결과는 정책적 고립과 국민의 신뢰 상실, 그리고 스스로 자초한 몰락뿐임을 역사는 증명해 왔다. 지도자의 정서적 안정감은 곧 국가의 안정감이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위기의 시대에 국민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대통령의 진중하고 의연한 품격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