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식 경북대 생명공학부 교수
이제 새 지방정부의 시간이 시작됐다. 선거 과정에서 제시된 지역 발전 공약들은 이제 구호가 아니라 실행의 과제가 됐다. 기업 유치, 산업단지 조성, 교통망 확충, 청년 일자리 확대는 새 지방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들이다. 그러나 출범 초기일수록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구경북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과연 우리는 무엇부터 다시 설계해야 하는가.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산업 전환의 지연, 지방 재정의 한계 등 지역이 직면한 위기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공장 하나를 유치하거나 도로 하나를 놓는 단편적 처방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 안에서 사람을 키우고, 지식을 만들고, 산업을 고도화하며, 그 성과가 시민의 삶으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전략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특히 거점국립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거점국립대는 단순히 학생을 가르치고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 아니다. 지역의 인재를 키우고,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며, 산업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축적하는 공공적 자산이다. 지역의 미래 경쟁력은 결국 사람과 지식에서 나오며, 대학은 그 출발점에 서 있다.
그동안 지방정부와 대학 사이에 다양한 산학협력 사업이 추진돼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상당수는 예산이 있을 때만 만나고 사업이 종료되면 관계가 끊어지는 단기적 협력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방식으로는 지역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이제 지방정부와 대학은 일회성 사업의 파트너를 넘어 서로의 생존을 견인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생 관계로 진화해야 한다. 지역의 미래를 함께 책임지는 굳건한 운명 공동체가 돼야 하는 것이다.
새 지방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학을 지역 정책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에 세우는 것이다. 산업정책을 수립할 때 대학 연구실을 함께 봐야 하고, 청년 정책을 설계할 때 학부생뿐 아니라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의 삶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대구경북이 가진 제조, 의료, 농생명 등의 훌륭한 자산들은 대학의 첨단 과학기술과 융합될 때 비로소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미래 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결국 지역의 미래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기업도 산업도 중요하지만, 이를 이끌어갈 우수한 인재가 없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많은 청년들이 더 나은 연구 환경과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이 아픈 흐름을 끊어내려면 단순한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청년들이 지역 안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창업하며, 때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튼튼한 성장의 경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거점 국립대는 바로 이 청년들이 굳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꿈꿀 수 있는 혁신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바이오, 첨단기술 같은 미래 산업의 씨앗은 하루아침에 싹트지 않는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기초연구와 우수한 인재가 만날 때 비로소 새로운 기술과 일자리가 탄생한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대학을 단기 성과를 내는 하청 기관이 아니라, 긴 시간의 지식 축적과 자유로운 탐구를 보장해야 할 연구 거점이자 혁신 플랫폼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존중해야 한다.
물론 대학 역시 뼈를 깎는 혁신으로 응답해야 한다. 지역의 혁신을 요구하면서 정작 대학이 과거의 낡은 관성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학과 간의 견고한 장벽을 허물고 융합 교육과 연구를 확대하며, 그 역량이 지역 사회의 묵은 과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도록 현장으로 다가가야 한다. 동시에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적 다양성도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힘은 장기적인 지식의 축적과 자유로운 탐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초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포함한 다양한 기초학문이 건강하게 성장할 때 지역의 미래 산업 역시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경쟁력은 단순히 평가 기준을 높인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우수한 대학원생, 안정적인 연구비, 도전적인 연구를 지지하는 제도, 그리고 실패를 허용하는 유연한 문화가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세계 수준의 연구가 가능해진다. 결국 지역 혁신의 진정한 출발점은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대학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새 지방정부 시대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건물을 지었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역 안에 얼마나 많은 인재와 지식이 뿌리내려, 시민의 삶과 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는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방정부의 실행력과 대학의 지식, 기업의 현장성과 시민사회의 참여가 하나로 뭉칠 때 대구경북은 다시 힘차게 심장 박동을 시작할 것이다. 진정한 지역의 재도약은 거점 국립대를 지역 혁신의 가장 든든한 파트너로 바로 세우는 일에서부터 다시 시작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