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52>조선 감상화의 차원을 바꾼 변상벽의 사실주의 동물화

입력 2026-06-24 11: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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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변상벽(1730-1775),
변상벽(1730-1775), '자웅장추(雌雄將雛)', 종이에 색, 29.4×46.3㎝,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그의 고양이, 닭 그림이 너무도 실감나 본 사람들이 '변고양이', '변닭'이라고 했던 영조 때 화원화가 화재(和齋) 변상벽의 '자웅장추'이다. 병아리 9마리와 암탉, 수탉 일가족이 종이 위에 생생해 그런 별명을 붙였던 사람들에게 공감이 간다. 대상 자체의 객관성에 근거한 전례 없는 화풍을 보여준 변상벽은 사실주의 동물화의 대가다.

검은빛 수탉은 번쩍이는 깃털과 활기찬 두 가닥 꼬리, 새빨간 볏에 사나운 눈매로 위풍당당하게 정면을 향하고, 옆모습인 흑갈색 암탉은 부리에 벌 한 마리를 물고 새끼들에게 먹이려는 참이다. 수탉 뒤로 흰색 암탉이 한 마리 더 있다. 닭은 일부다처! 배경은 연두빛 풀이 잔잔한 마당이다.

표암(豹菴) 강세황은 그림 속에 써넣은 화평에서 '정교한 솜씨 신묘하니(精工神妙) 옛사람이 미치지 못한 바다(古人所不及)'라고 했다. '신묘'하다는 감탄대로 이렇게 집요하게 관찰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그림은 예전의 화가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 선배라면 개를 잘 그린 남리(南里) 김두량(1696~1763)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영조가 총애한 화원화가다.

구구구~ 소리가 들릴 듯한 변닭 변상벽의 그림에서 닭이 오덕(五德)을 갖춘 덕금(德禽)이니, 닭이 새겨진 종묘의 제기 계이(鷄彛)니, 닭의 볏이 벼슬을 상징하니, 화보의 닭 그림이니 등등을 떠올리는 것은 무용하다. 조선 회화의 차원이 달라졌다.

말로만 듣던 변상벽의 닭 그림을 직접 본 다산 정약용이 지은 제화시 '제변상벽모계령자도(題卞尙璧母鷄領子圖)'가 무려 200자에 달하는 5언 40구의 장시인 것은 이 그림의 새로움에 그만큼 감동했기 때문이다. 산수든, 화조든, 영모든 그림의 뜻을 중시하고, 사실(寫實)보다 사의(寫意)를 선호한 조선의 감상화 전통을 변상벽이 바꿔 놓았다는 사실을 '실학(實學)'의 집대성자라고 일컬어지는 정약용은 누구보다도 잘 알아봤던 것이다.

'자웅장추'는 1937년 3월 28일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간송 전형필 선생이 구입했다. 전형필은 이듬해 성북동 언덕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열었다. 지금의 간송미술관이다. 오래전 보화각 입구로 향해가는 뜰의 왼쪽에 있었던 닭장에서 꼭 이렇게 생긴 수탉을 보고 그 위용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