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 극장 로비에서 두 대작이 마주쳤다. 하늘과 바다의 신화가 충돌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7월 15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호프'엔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존재가 내려오고, 8월 5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에서는 바다를 떠돌던 영웅의 이야기를 전한다. 낯선 존재의 도착과 낯선 몰골이 된 영웅의 귀환이다.
두 영화는 묻는다. 땅(뭍)으로 온 눈앞의 존재를 우리는 신과 괴물, 손님과 침입자 중 뭐라 부를 것인가.
◆'호프'…사람이 되려는 쪽은 누구인가?
'호프' 해석에 단군신화가 등장했다. 극본을 쓴 나홍진 감독이 언급한 얘기는 아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영화에 반복해 나타나는 곰과 호랑이라는 소재, 하늘에서 온 존재와 땅의 인간이 충돌하는 구도를 단군신화의 변주로 읽었다.(7월 22일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유튜브)
영화는 호포항 출장소장을 맡고 있는 경찰관 고범석(황정민 분)이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시작한다. 이름부터 '범'(호랑이를 뜻하는 순우리말)을 품은 인물이 하늘에서 내려온 낯선 생명체와 마주하고, 곰과 호랑이의 이미지가 이야기꾼 해술 아저씨(임현식 분)의 입을 비롯해 영화 곳곳을 맴돈다.
단군신화의 묘미는 곰과 호랑이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짐승의 경계를 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호프도 종의 경계를 흔든다. 외계 존재는 인간보다 압도적인 기술을 지녔지만 자식을 잃고 슬퍼하며, 인간은 문명을 자처하면서도 알 수 없는 생명체 앞에서 다른 짐승을 사냥하는 짐승처럼 돌변한다. 어느 쪽이 더 사람답고 어느 쪽이 더 짐승다운지 관객들은 질문에 직면한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사람이 되려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고 어둠 속에서 견디라는 시험을 내린다. 곰은 견뎌 웅녀가 되고, 호랑이는 뛰쳐나간다. 영화는 이 시험지를 인간에게 돌려주는 영화처럼 보인다. 호포항 전체가 거대한 동굴이고, 주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마늘을 먹는 일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공포를 견디는 일이다. 낯선 존재를 이해할 때까지 두려움과 충동을 참을 수 있는가. 알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먼저 총을 들지는 않는가. 인간의 경솔한 폭력이 파국을 부르면서 짐승과 인간의 경계는 흐려진다.
◆단군신화 위에 포개진 성경
여기에 영화사의 단골 메타포인 성경의 그림자가 포개진다. 외계 종족의 황비 조르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의 한 구절을 읊으며 '보이지 않는 것'과 '믿음'에 대해 얘기한다. 잃어버린(호포항 사람들과 관객에겐 '죽어버린') 아들과 그를 되찾으려는 어머니, 희생과 부활의 가능성, 영화 제목인 '희망'까지 기독교 구원 서사를 연상시킨다. 나홍진 감독은 전작 '곡성'이 토속 신앙의 관점에 가까웠다면 호프는 성경 속 신의 시선을 택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인물 하나하나를 환웅, 웅녀, 예수 등에 끼워맞추면 영화는 단순한 퍼즐 풀이가 되고 만다. 차라리 두 신화가 충돌하는 방식을 살피면 영화를 보는 감칠맛이 터진다.
단군신화에서 하늘의 존재는 새 나라의 시작을 열지만, 호프에서 하늘의 존재는 마을의 종말을 부를 수 있다. 성경의 희망은 구원을 향하지만, 영화에서는 인간의 생존과 외계 어머니의 소망이 부딪친다. 나홍진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엔 여러 존재의 희망이 있다. 그래서 제목은 낙관의 선언보다 질문에 가깝다. 누구의 희망이 살아남아야 하는가.
호포항이 남북이 맞선 경계에 위치해있다는 설정도 곁들여 살펴볼만하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적과 동지, 주민과 이방인,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게 남북이 대치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마녀사냥처럼 병적으로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는 '레드 컴플렉스'를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도 질문이 하나 나온다. 타자가 악해서 폭력이 시작되는가, 아니면 타자를 끝까지 이해할 인내가 없기에 악이 만들어지는가.
◆'오디세이'…집으로 돌아오면 전쟁은 끝나는가?
'오디세이'의 신화는 영화에 숨어있지 않다. 불후의 고전이며 우리나라에선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기에 제목이 익숙하고 내용도 어디서 들어본 기억이 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원작이다.
10년 간의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가 다시 10년을 떠돈 끝에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가 기다리는 이타카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든 마녀 키르케, 항해하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노래로 홀리는 세이렌,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며 진퇴양난의 질문을 던지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오디세우스를 사랑해 7년 간 동거한 칼립소(샤를리즈 테론 분) 등이 오디세우스의 바다 위 귀향길을 막아서는 존재로 등장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극본은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거의 끝나갈 무렵부터 출발해 여러 인물의 회상(플래시백)과 이야기 속 이야기(액자식 구성)로 지난 모험을 되짚는다.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등의 작품에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는 특기를 뽐냈던 감독에게 오디세이아는 2천700여년 전에 쓰인 '비선형 서사'의 전범이라 더욱 애착이 갔을듯 하다. 페넬로페가 남편(오디세우스)이 부재한 상황에 수많은 남성들의 강압적 구혼을 피하려 늙은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짤 때까지 재혼 상대를 선택하겠다 선언하곤, 낮에 짠 천을 밤에 도로 풀어버리는 지혜로 3년의 시간을 버는 모습은 특히나.
놀란은 유명한 괴물들을 불러오면서도 신들의 자리는 줄였다. 원전에서 아테나(젠데이아 분)와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직접 움직이지만, 영화는 신적 개입을 자연현상과 환영, 기억과 죄책감에 가까운 것으로 표현한다. 먼저 이뤄진 해외 공개 후 원전의 큰 줄기를 지키면서 신화보다 인간의 심리, 특히 전쟁과 기억, 죄책감, 트라우마에 무게를 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괴물은 바깥에 있지만 더 무서운 괴물은 트로이를 불태우고 돌아오는 영웅의 안에도 있다는 해석이다.
◆영웅과 침략자, 뒤집힌 두 얼굴
원작의 오디세우스는 힘보단 꾀로 살아남는다. 폴리페모스에게 자기 이름을 '아무도 아니다'라고 속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름을 감추고 여러 얼굴을 써야 집에 보다 가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웅은 마침내 어느 얼굴로 가족 앞에 서야 할까. 놀란의 영웅담은 자연스럽게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서 원작의 중요한 규칙인 '크세니아', 즉 손님과 주인 사이의 환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낯선 여행자는 변장한 신일 수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약속이다. 오디세우스는 어떤 섬에서는 환대를 받아 목숨을 구하고, 어떤 곳에서는 손님을 잡아먹는 괴물과 만난다. 그런데 트로이를 함락시킨 그는 다른 이들의 도시를 파괴한 침입자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문명인과 야만인, 영웅과 약탈자의 구분은 보는 위치에 따라 전복된다.
그래서 귀향이 불확실하고 불완전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따라다닌다. 20년 만에 돌아온 사람은 떠날 때의 남편과 아버지가 아니며, 기다린 가족과 고향도 그대로 멈춰 있지 않다. 집의 문턱을 넘는다고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다. 전쟁은 기억과 죄책감의 형태로 사람 안에 따라 들어온다. 오늘날의 참전 군인과 난민, 고향을 잃은 이주민에게도 '돌아간다'는 말이 단순할 수 없는 이유다.
호프에서는 하늘에서 온 존재가 이방인이 되고, 오디세이에선 바다에서 돌아온 영웅이 정작 자기 집에서 이방인 행세를 해야 한다.
두 작품 모두 괴물을 실컷 보여주며 영화를 보는 재미 그 자체를 채워주지만, 좀 짓궃은 질문도 던진다. 관객이 괴물이라고 가리킨 손가락을 천천히 인간 쪽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무더위를 피해 신화 속으로 들어간 관객들은 결국 현실의 질문을 들고 극장 밖으로 나오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