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엔 보사노바가 있다. 재즈의 화성과 브라질 삼바의 리듬,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의 공기가 만나 세계적 음악 언어가 됐다. 아르헨티나에는 탱고가 있다. 유럽 춤곡의 문법, 아프리카계 리듬, 이민자들의 애환이 항구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서와 뒤섞여 만들어진 장르다.
음악은 오래 전부터 스미고 섞였다. 한국에선 어땠을까.우선 재즈와 우리 가락이 만났다.
◆한국형 재즈 첫 시도
기념비적 출발이 된 음반이 이판근과 코리안 째즈 퀸텟 '78의 '재즈로 들어본 우리 가요 민요 팝송'(1978)이다. 편곡을 맡은 이판근을 비롯해 손수길, 김수열, 강대관, 최세진, 이수영 등 우리나라 선구자격 재즈 연주자들이 참여한 이 음반의 핵심은 민요 재즈다. 민요 '아리랑' '가시리' '한오백년'이 재즈 편곡으로 실렸다.
중요한 것은 이 음반이 단순히 민요 멜로디를 재즈 악기로 연주한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요가 재즈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재즈가 민요 안에 숨어 있던 흔들림과 여백을 발견한 것에 가깝다.
◆재즈클럽의 아리랑
이후 재즈와 우리 가락의 만남은 두 방향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대중화, 또 하나는 실험이다.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은 재즈클럽 야누스에 모인 연주자들과 함께 'Jazz At The Janus Vol.1'(1985)을 발표, 2번 트랙으로 '밀양아리랑'을 수록했다. 한국 민요의 선율은 유지한 채 리듬, 화성, 악기 운용을 완성도 높은 재즈의 언어로 구현한다.
상징적 장면이다. 민요는 원래 마당, 들, 지역 공동체 안에서 불렸다. 그랬던 마당의 노래가 재즈클럽의 한 넘버로 손색없이 연주된다. 이 곡의 편곡도 이판근이 담당했다.
◆날것의 협연과 실험
대중화의 길이 있었다면, 조금은 거친 실험도 있었다. 길옥윤, 류복성, 이생강, 이성진이 함께한 '민속악과 째즈'(1987)는 제목 그대로 민속악과 재즈의 정면 충돌이다. 색소폰(길옥윤), 봉고(류복성), 대금(이생강), 장구(이성진)라는 재즈 악기와 국악기들이 만나 긴 호흡의 연주를 펼친다.
세련된 크로스 오버라기보단 날것 그대로의 조화를 드러내는 시도에 가깝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연주자들이 같은 녹음실 안에서 즉흥적으로 대화하는 느낌이 강하다. 어떤 대목은 투박하고, 또 어떤 대목은 긴장감이 넘친다. 그 어색함이 귀하다. 완성된 장르가 아니라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1990년대로 이어져 좀 더 풍성해졌다. 타악기 주자 김대환의 '흑경'(1993) 앨범은 그가 신기의 경지로 다루는 각종 타악기에 피아노, 색소폰, 해금을 아우른 프리재즈적 실험이었다. 특히 김대환은 야마시타 요스케, 우메즈 가즈토키, 강은일과 함께 'ARIRANG'을 연주하며 우리 민요를 재즈의 자유로운 즉흥성 안에 던져넣기도 했다. '민속악과 째즈'가 국악과 재즈의 정면 충돌이었다면, '흑경'은 그 충돌을 더욱 추상적인 프리재즈의 세계로 끌고 간 사례다.
비슷한 시기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오스트리아 색소폰 거장 볼프강 푸쉬닉이 이끈 4인조 재즈 밴드 Red Sun의 협업도 중요하다. 이들은 사물놀이의 장단과 재즈의 즉흥연주를 합쳤다. 'Then Comes The White Tiger'(1994)와 'Nanjang A New Horizon'(1995) 같은 음반에 결과물을 담았다. 이들은 함께 수십년 동안 유럽 등지 해외 공연을 펼치며 세계화의 문을 두드렸다.
◆좀 더 대중 속으로
대중가요계에서도 흐름이 이어졌다. 우선 김동률이 수행했다. 전람회 시기부터 수준 높은 재즈 가요를 여러 곡 선보인 그는 자신의 2집 희망(2000)에서 '염원'과 '님'을, 3집 귀향(2001)에서 '우리가 쏜 화살은 어디로 갔을까' '구애가' '자장가' 등을 선보이며 대중가요 안에서 우리 가락의 멜로디 감각을 어떻게 세련되게 운용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가요를 부르던 인순이는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재즈를 배워오더니 자신의 첫 재즈 앨범 '재즈'(2003)를 내놨는데, 우리 민요 가사를 스캣(흥얼거림)으로 구성지게 구사하는 재즈 민요 두 곡 '사설난봉가'와 '창부타령'이 백미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강원도 아리랑'(2010)과 '아리랑'(2013)도 함께 나열해야할 사례다. 우리 민요를 유럽 재즈의 미니멀하고 섬세한 어법으로 재구성해 들려줘 호평을 받았다. 나윤선은 평소 공연에서 아리랑을 빼놓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3년 강원도 아리랑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 재즈가 우리 가락 가운데 가장 먼저, 또 가장 꾸준히 붙잡아온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재즈는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아리랑을 번역했고, 그때마다 아리랑은 오래된 민요가 아니라 새롭게 들리는 노래가 됐다.
<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