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모 방송국 PD에게서 뜻밖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진작가인가요, 사진가인가요. 어떻게 표기하는 게 좋을까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두 표현은 모두 익숙했지만 그 차이를 명확히 설명해 본 적은 없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그 질문은 다시 나 자신을 향해 되돌아왔다.
사진을 매체로 삼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다. 사진가, 사진작가, 포토그래퍼, 다큐멘터리스트, 때로는 미디어 아티스트. 큰 의미에서는 모두 작가지만 같은 일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름을 쓴다.
흥미로운 점은 영미권에서는 이런 구분이 상대적으로 단순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포토그래퍼(photographer)'라는 말로 통칭하고 필요할 때만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퍼(documentary photographer)', '파인아트 포토그래퍼(fine art photographer)' 혹은 '아티스트(artist)'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영어의 포토그래퍼(photographer), 페인터(painter), 라이터(writer)는 모두 끝에 '-er'를 붙여 만든 말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이름이다.
반면 아티스트(artist)는 조금 다르다. 기술과 숙련을 뜻하는 라틴어 ars에서 비롯된 이 말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어떤 사람인가를 가리킨다. 행위를 설명하는 이름과 존재를 설명하는 이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영미권에서는 '사진가인가 사진작가인가'를 구분하기보다 '포토그래퍼인가 아티스트인가'를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는 이름을 더 세분화한다. 직업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싶은가에 대한 문화적 습관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사진의 역사적 맥락을 떠올리면 이러한 혼재는 낯설지 않다. 사진은 오랫동안 기록과 기술의 영역에 가까웠고, 미술의 범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진작가'라는 말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사진을 예술의 언어로 자리매김하려는 의지에서 나온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혼용은 혼란이라기보다 그 과정을 지나온 흔적에 가깝다.
오늘날 사진은 더 이상 유형이나 사건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와 파인아트, 설치와 영상이 뒤섞이며 경계는 느슨해졌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셔터를 누르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사진가인가, 사진작가인가.
작업의 현장에서 그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기록과 표현, 예술과 기술은 늘 겹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 답이 어렵다. 어쩌면 예술은 어떤 이름을 갖느냐보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