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이 걸어온 길] '지역주의 전사' 넘어 새 역사 '첫 민주당 대구시장' 도전

입력 2026-05-03 16:30:00 수정 2026-05-03 17: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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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 웅변가로 각인
이해찬·문익환·제정구 재야 지도자들과 정치권에 첫 발
16대 총선 경기 군포 첫 국회의원…2년간 뿌린 명함만 8만장
'지역주의 타파' 대구 정치 4전 1승 3패…국무총리 역임 거쳐 대구 귀환

1987년 11월 대선 당시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김대중 후보 유세장에서 민통련 대표 자격으로 지원 연설을 하고 있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의 모습. 캠프 제공
1987년 11월 대선 당시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김대중 후보 유세장에서 민통련 대표 자격으로 지원 연설을 하고 있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의 모습. 캠프 제공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악전고투를 벌여온 자신의 인생 궤적을 발판 삼아 '보수의 심장' 대구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일평생 숱한 역경을 극복해 온 김 후보는 특유의 투사적 기질과 뚝심으로 대구 정치사를 새로 쓴 '지역주의의 전사'로 불린다. 대구시장 선거를 앞두고 이번에는 '국무총리 출신의 집권 여당 후보'로 더 강력해진 면모로 돌아왔다.

김 후보는 "대구가 살길을 열겠다. 이제 지역주의 극복이 아니라 '지역 소멸'의 벽을 함께 넘자"며 대구 시민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강골 김부겸'의 운명

1956년 경북 상주군 상주읍 오대리에서 태어난 김 후보는 공군에 복무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2대 독자로 태어났다. 대구국민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며 여러 차례 구속되는 파란만장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1979년 유신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 열망이 커질 무렵, 김 후보가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우리가 결단해 열어나가자"며 15분가량 연설한 일화는 유명하다. 웅변가로 각인되며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 '야전사령관'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윗줄 첫 번째)가 경북고 학생회 간부들과 찍은 사진.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윗줄 첫 번째)가 경북고 학생회 간부들과 찍은 사진.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까짓 거,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경북고 학생회장 선거에도 출마했었다. 캠프 제공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의 서울대 졸업식 사진. 김 후보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의 서울대 졸업식 사진. 김 후보는 "아버지의 양 날개를 꺾으면서까지 파란만장한 대학생활을 했지만 다행히 서울대 졸업장은 받았다. 대학 시절의 혹독한 경험들은 내게 잔인했지만 나는 서서히 단련되어 갔다"고 회고한다. 캠프 제공

◆선배들과 걸은 정치인의 길

1982년 한국은행 대구지점에서 근무하던 이유미 여사와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운동권 수배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줄곧 고초를 겪었다. 결혼 전에도 이 여사는 대공분실로 연행돼 가혹한 심문을 받기도 했다. 결혼 후 김 후보는 '대구 미 문화원 폭파사건'에 휘말리는 일을 겪었고 부부는 돌도 안 된 첫째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했다.

부부는 신촌에서 '오늘의 책'이라는 서점을 열었다. 이 여사가 발로 뛰어다니며 대출을 받아 생계를 이어갔다. 김 후보는 "지금도 아내와 말다툼이 안 되고 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마음의 빚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에서 정치권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간사로 합류해 이해찬, 문익환, 제정구 등 재야 지도자들과 함께한 경험은 정치적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1991년 민주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고, 노무현 당시 대변인 밑에서 부대변인을 맡았다. 1995년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주축이 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 몸담았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통추가 갈라지면서 한나라당에 합류, 김대중 전 대통령 손을 잡은 노 전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1982년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와 한국은행 대구지점에서 근무했던 이유미 여사와의 결혼식 사진. 캠프 제공
1982년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와 한국은행 대구지점에서 근무했던 이유미 여사와의 결혼식 사진. 캠프 제공
1996년 여름 국민통합추진회의 MT 모습. 뒷줄에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을 비롯해 가운데 줄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는 그날 사회를 봤고, 그로부터 8년 뒤 노 전 대통령과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취임을 축하하는 청와대 만찬에서도 김 후보는 사회를 봤다. 캠프 제공
1996년 여름 국민통합추진회의 MT 모습. 뒷줄에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을 비롯해 가운데 줄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는 그날 사회를 봤고, 그로부터 8년 뒤 노 전 대통령과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취임을 축하하는 청와대 만찬에서도 김 후보는 사회를 봤다. 캠프 제공

◆소신과 집념, 진정성

2000년 16대 총선에서 경기 군포에 출마해 근소한 표차로 당선,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2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약 8만장의 명함을 뿌렸던 진정성이 통했던 결과였다.

국회 입성 후에도 '소신'을 택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당론과 다른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김부결'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며 다시 노 전 대통령과 한배를 탔다. 김영춘, 안영근, 이부영, 이우재 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으로 옮겨 '독수리 5형제'라 불리며 한국 정치의 변화를 모색했다.

탈당의 회오리 속에서도 군포시민들은 두 번이나 김 후보를 신임해 줬다. 군포는 그에게 '제2의 고향'으로 깊은 인연의 땅이 됐다. 주변에서 "가만히 있으면 4, 5선은 거뜬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김 후보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2004년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미국 보스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만나 찍은 사진. 캠프 제공
2004년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미국 보스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만나 찍은 사진. 캠프 제공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의 의정활동 사진. 김 후보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의 의정활동 사진. 김 후보는 '백봉신사상' 대상 두 번을 포함해 총 여섯 번을 수상했다. 해마다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물어 가장 품위 있고, 뛰어난 의정활동을 보인 의원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캠프 제공

◆대구 정치사 새로 쓰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투옥을 거듭한 강성 운동권 출신이지만, 현실 정치에 뛰어든 이래 줄곧 진영을 가르는 정치는 안 된다고 주창해 왔다. 3선 의원이 된 김 후보는 왜 자신이 정치를 시작했는지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답은 '고향 대구'였다. 안정된 정치적 기반을 내려놓고 다시 도전의 길에 나서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자신의 아성이었던 군포를 떠나 2012년 총선에서 대구 출마를 선언하자 '무모한 도전'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대구에서 네 번의 도전을 이어갔다.

2012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갑에 나섰으나 고배를 들었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출마해 40.33%의 득표율을 얻었으나 지역주의의 벽 앞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그는 홀로 수성구 골목골목을 누비며 시민들을 만났다. 저녁에는 술집을 돌며 주민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어려움을 들었다. '험지 중 험지'에 대한 당의 지원은 전무했지만 '나홀로 운동' '벽치기 유세'를 하며 고군분투했다.

결국 3번째 도전인 2016년 20대 총선(대구 수성구갑)에서 대구 민심이 화답하며 4선 의원에 올랐다. 민주당 최초로 보수 정당 후보를 꺾고 대구 의원에 처음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2016년 20대 총선에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가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던 중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환호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2016년 20대 총선에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가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던 중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환호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

2017년 문재인 정권 출범과 함께 행정안전부 장관을 맡았다. 2020년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할 당시 정부와 당에 대구 지원과 연대를 강하게 요청하며 1조원 예산 지원도 이끌어냈다.

김 후보는 당시 페이스북에서 "대구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듯한 표현은 정말 참기 어렵다"며 "특정 지역에 편견을 갖다 붙여 차별하고 냉대하는 게 지역주의고, 그걸 정치에 악용하는 행태가 지역주의 정치"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2020년 총선에서 다시 대구 수성구갑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들었다. 2021년 제47대 국무총리에 오른다. 퇴임과 함께 정계를 은퇴한 김 후보는 지난 3월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대구로 귀환했다. '도전'으로 압축되는 인생의 여정을 걸어온 김 후보는 이제 '첫 민주당 소속 대구시장'이라는 새 역사에 도전한다.

김 후보는 "나의 땀 한 방울까지 모든 걸 대구를 위해 쏟겠다"며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취수원 문제 해결, 대구경북 행정통합, 2차 공공기관 이전, 산업구조 재편까지 제가 책임지고 완수하겠다"고 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지난 3월 30일 대구 2·28 기념중앙공원에서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캠프 제공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지난 3월 30일 대구 2·28 기념중앙공원에서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캠프 제공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지난 4월 26일 대구 달서구의 희망캠프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캠프 제공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지난 4월 26일 대구 달서구의 희망캠프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캠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