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은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당성을 선언하는 문장이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를 압축한 것이다. 특히 오늘의 민주주의가 어떤 뿌리에서 출발했는지 분명히 밝히는 기술(記述)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구 2·28민주운동을 헌법 전문에 명시해야 한다는 요구는 충분한 근거와 당위성을 갖는다.
2·28은 단순한 지역 사건이 아니다. 1960년 2월 28일, 자유당 정권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에 맞서 경북고·대구고 등 대구의 8개 고교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저항했다. 대한민국 현대사 최초의 민주운동이다. 이 불씨는 3·15 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지며 독재(獨裁)정권을 무너뜨렸다. 한국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2·28은 명백한 출발점이다.
헌법 전문에는 4·19 혁명('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만 명시(明示)돼 있다. 문제는 최근 개헌 논의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의 수록을 논의하면서도 2·28은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화의 기원을 외면하는 행태다. 또한 특정 지역 편중(偏重)이다.
2·28은 201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2·2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10여 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다. 대구시의회가 건의문을 채택했고, 관련 단체들도 정치권에 끊임없이 요구했다. 물론 신중론도 있다. 헌법 전문에 개별 사건을 계속 추가할 경우 형평성(衡平性) 논란과 과도한 나열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헌법 전문이 '사건 목록'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선언'이란 점을 감안하면, 역사적 분기점이 되는 사건을 선별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오히려 필요하다. 2·28은 그 기준(최초성·역사적 영향력·민주주의 발전에 기여)을 모두 충족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다. 특정 지역의 요구로 비칠 경우 논쟁은 소모적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2·28의 본질은 '대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의 각성(覺醒)에 있다. 지역의 기억을 국가의 기억으로 확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개헌 논의가 본격화된다면, 2·28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