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대성의 헬기 이야기] 진동 없이는 날 수 없다: 회전익의 리더십과 국제정치

입력 2026-05-01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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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성 전 육군 헬기부대 대장, 정치학 박사
하대성 전 육군 헬기부대 대장, 정치학 박사

◆숙명적인 진동, 비상을 위한 첫 번째 조건

헬기 조종석에 앉아 엔진을 깨우고 로터를 돌리기 시작하면, 기체는 이내 거대한 진동에 휩싸인다. 매끄러운 활주로를 달려 우아하게 비상하는 고정익 항공기와는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회전익은 이착륙의 찰나부터 스스로 만들어낸 공기역학적 불안정성, 즉 '자기 발생적 혼돈'과 싸워야 한다. 이 진동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중력을 이기고 부력을 얻기 위해 반드시 껴안아야 할 숙명이다.

이 헬기의 역설은 현대 국제정치의 민낯과 닮아 있다. 주권 국가들이 국익과 생존을 둘러싸고 충돌하는 국제사회에서 갈등이 없는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헬기가 진동 속에서 비로소 이착륙의 힘을 얻듯, 국제질서 역시 끊임없는 대립과 조정의 진동 속에서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며 나아간다. 갈등을 피하려는 욕망은 이해할 만하지만, 흔들림 자체를 부정하는 순간 헬기는 결코 대지를 떠날 수 없다. 결국 이 말은, 국제정치에서 위기를 없애려 하기보다 이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쪽이 승자가 된다는 뜻이다.

◆전장의 불협화음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전략적 조율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은 이러한 '국제정치적 진동'이 기체를 파손시킬 수 있는 위기를 보여준다. 전쟁 초기, 서방 세계는 러시아 에너지 의존과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거대한 진동에 휘말려 거친 불협화음을 냈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자유 진영은 이 진동을 방치하는 대신 '가치 연대'라는 강력한 댐퍼를 작동시켜 국방비 증액과 결속력 강화라는 새로운 추진력을 얻었다.

중동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립으로 발생한 회전 토크를 상쇄하기 위해, 미국과 주변국들이 '세력 균형'이라는 테일 로터(헬리콥터의 중요한 부위로, 로터 회전으로 인해 동체가 돌아가는 반작용을 막는 한편 동체 자체의 방향제어에 필요)를 쉼 없이 조작하고 있다. 헬기에서 테일 로터가 멈추면 기체는 빙글빙글 돌다 추락하듯,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지역 질서는 순식간에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간다.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갈등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장악하고 관리해야 할 역동적 에너지인 셈이다.

◆정중동(靜中動)의 고독한 리더십, '호버링'

헬기의 가장 고난도 기술인 호버링(제자리 비행)은 밖에서 보면 정지된 듯 평온하지만 조종석 안은 사투의 현장이다. 조종사는 초당 수십 번씩 미세하게 조종간을 움직이며 기류의 변화에 대응한다. 비대칭·하이브리드 전쟁이 일상화된 오늘날, 첨단 기체가 값싼 드론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정교한 감각이다.

과거의 거대 담론만으로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전장에서 입증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변화무쌍한 전장과 복잡하게 얽힌 국제 여론 속에서 기체의 수평을 유지하며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 기수를 돌리는 '호버링 리더십'이다.

◆진동을 장악하는 국가만이 승리할 권리를 얻는다

대한민국은 북핵 위기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전례 없는 거대한 진동 속에 서 있다. 이 진동을 두려워하며 회피하는 것은 비행을 포기하고 추락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진동 없는 평화'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진정한 평화와 안보는 정적이 아니라, 어떤 격동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국가 이익에 맞는 선택을 이어갈 수 있는 강력한 제어 능력, 즉 전략적 자율성에서 나온다.

전략적 자율성이란 동맹과 상호의존을 유지하되, 북핵 억제, 미·중 사이 기술·안보 협력, 방산·에너지 자립 같은 핵심 사안에서 우리 스스로 기수를 돌릴 수 있는 힘이다.필자가 말한 '실패할 자유'란, 이 거친 전장의 진동 속으로 기꺼이 기수를 돌려 들어가는 국가와 지도자의 용기를 뜻한다. 움직이지 않는 기체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진동을 두려워해 멈춰선 헬기는 비상할 수 없다. 우리 사회와 국가 전략 역시 내부와 외부의 갈등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때만 높이 떠오를 수 있다. 전략가는 진동을 없애는 사람이 아니라, 진동을 이용해 더 멀리 비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흔들림을 장악하고 그 위에서 냉철하게 균형을 잡는 국가만이 각자도생의 살벌한 국제정치 전장에서 진정한 승리를 향해 전진할 권리를 얻을 것이다.

하대성 전 육군 헬기부대 대장,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