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거래소,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세미나' 개최
투자자 "지배력 레버리지·NAV 디스카운트 유발…일반주주 희생 구조"
재계 "자본 조달 효율성 약화·규제 부담 확대…자본시장 경쟁력 저하"
금융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으로 지목된 중복상장에 대해 '원칙 금지, 예외 허용' 기준 적용을 예고한 가운데, 투자자와 재계 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중복상장의 비대칭성이 갖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 반면 재계는 과도한 규제 시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 우려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학계·금투업계·기업 관계자 등 약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첫 발제자로 나선 나현승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우리나라의 중복상장은 해외 주요국 대비 높은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0~2021년 국내 증시에 신규 상장한 기업 중 중복상장 기업은 자회사 기준 157개로 전체 약 20%에 달했다. 중복상장 비율을 '상장사가 보유한 타 상장사 지분 시장가치/전체 시가총액'으로 정의할 때 한국 시장은 약 18%였지만, 일본·대만·미국·중국 등은 5% 미만으로 나타났다.
나 교수는 "중복상장은 모회사 일반주주, 자회사 일반주주 간 이해 상충이 발생할 수 있고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에서도 이해 상충이 일어날 수 있다"며 "모회사의 지분가치 저평가 문제도 발생하는데, 중복상장 시 ▲이익 더블카운팅 ▲자산의 유동성·수익 환원 제약 ▲대리인 문제·미래 리스크 등의 문제가 나타날 우려도 높다"고 말했다.
실제 자회사가 IPO(기업공개)를 위해 한국거래소에 상장심사를 청구했을 때 모회사의 주가는 단기적으로 상승 흐름을 보였지만, 자회사 상장 이후 1개월 평균 수익률은 –7.58%, 6개월은 –10.81%로 집계됐다. 모회사 기업가치가 원래부터 낮았던 것이 아니라 자회사 상장 이후 가치 저하로 인해 주가가 하락한 셈이다.
나 교수는 신규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상장심사 시 ▲자회사가 추진 중인 사업의 성장성 ▲신규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의 필요성 ▲자금조달이 자회사 IPO여야만 하는 타당성 등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예외를 인정하는 형태로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복상장이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 ▲일반주주의 과반 결의 도입 ▲인수 시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등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존 중복상장 기업은 지배구조보고서에 중복상장 관련 사항을 의무적으로 기술하도록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자회사와 모회사 간 거래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통해 일반주주 간 이해 상충을 방지하고 공개매수제와 포괄적 주식 교환 등 상장 폐지할 경우 주주 보호에 대한 점검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복상장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또는 모회사와 자회사 일반주주 간 이해 상충을 일으켜 모회사 가치 저하의 원인이 된다"며 "신규 중복상장의 원칙적 금지와 예외 허용이 필요하고 기존 중복상장 해소 유도를 통한 이해 상충 완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임흥택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중복상장 제도개선 추진 방안의 주요 내용들을 설명했다.
거래소는 오는 6월을 목표로 상장·공시 규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중복상장은 '원칙 금지, 예외 허용'으로 운영하고 질적 심사기준에 중복상장 특례를 마련해 심사 대상·심사 기준을 규정한다. 자회사 상장 시에는 모회사 이사회에 주주 충실의무도 부여할 예정이다.
심사 대상에는 물적분할, 인적분할, 설립·인수 등 경제적 동일체로 인식되는 종속회사 등을 별도 상장하는 경우 모두 포함되며 ▲영업 독립성 ▲경영 독립성 ▲투자자 보호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하되, 하나라도 미충족 시에는 미승인된다.
또한 모회사에는 일반주주 관점에서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주 보호 필요성에 비례하는 주주 보호 방안을 마련·공시토록 한다. 자회사 상장·주주 보호 방안에 대해 주주와 소통을 실시하도록 하고 이를 반영해 자회사 상장 관련 찬반 의견도 공시해야 한다.
임 상무는 "우리 자본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선진 시장으로 레벨업을 위해서는 주주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공정한 상장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거래소는 이번 제도개선 추진 등을 통해 시장의 신뢰 회복 자본시장 밸류업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 투자자와 재계 간 의견이 엇갈렸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중복상장이 지배력 레버리지 문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지배주주가 각 단계에서 30%씩만 보유하더라도 3단계 피라미드 구조를 거치면 실질 지분율은 2.7%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의결권은 10배를 넘는 30%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또 중복상장은 NAV(순자산가치) 디스카운트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모회사 일반주주는 종속기업에 대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 사실상 '우선주적 지위'로 격하되고 종속회사 지분 100% 미만 보유 시 이익의 온전한 귀속이 불가한 데다 배당 과정에서 과세가 발생해 세무상 비효율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중복상장 구조는 지배주주에게 최소 자본으로 지배력을 극대화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반면 일반주주의 이익은 구조적으로 희생시키는 매커니즘"이라며 "중복상장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이사들이 주주충실의무에 기반해 어떤 이유로 중복상장이 전체 주주의 비례적 이익관점에서 가장 좋은 결정이었다고 판단했는지 상세히 공시토록 하고 반드시 모회사 일반주주 과반의 동의를 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서경 부산대학교 투자동아리 SMP 부회장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나라의 지배구조 문제, 특히 중복상장 여부를 주요 저평가 요소로 보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한다"며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이 해외 시장과 비교할 때 매우 높은 수준임을 감안하면 한국 자본시장 전체의 디스카운트에 중복상장이 매우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중복상장에 대한 일률적 규제보단 기업이 자발적으로 주주의 권익 보호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하는 유인 기반의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인투자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영국의 MoM(소수 주주 과반 의결제)과 같은 장치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반면 재계에서는 중복상장 금지 시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 우려했다. 김춘 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중복상장을 금지하게 되면 기업의 자본 조달 효율성 약화, 지주회사에 대한 역차별 규제, 이사 충실의무 확대 등 '이중 규제 부담'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중복상장 시 모회사 이사에게 충실의무를 부여하는 방안도 규제가 명확하지 않고 주주 보호라는 명분과 달리 국내 자본시장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상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은 "벤처투자 회수 수단 중 IPO가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복상장 규제는 벤처투자 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크게 저해할 것"이라며 "획일적인 규제 적용 시 대·중견기업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추진하는 건전한 M&A(인수합병)나 신사업 투자심리도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특성을 반영한 예외 기준을 설정해야 하며 중견·중소기업 계열사에 대해서도 중복상장 심사를 제외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며 "VC(벤처캐피탈) 투자는 장기적인 회수 계획을 바탕으로 이뤄지므로 갑작스러운 규제가 모험자본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명확하고 정량적인 지표 제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현 정부는 신뢰도 제고, 주주 가치 중심 문화 확산 등을 중심으로 자본시장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며 "중복상장 금지도 결국 주주 가치 중심 문화 확산을 위한 방안이며 거래소와 함께 길을 열고 계속 고민해 나가겠다"고 했다.
중복상장 이슈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간 중복상장 이슈는 국내 지주사들의 주가를 짓누르는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지적받아왔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중복상장 자회사(상장 모회사의 지분 50% 이상)는 239사로 전체의 9.4%를 차지한다. 국내 상장사 중 자회사인 경우는 571사로 전체 22%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월 22일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오찬에서 "중복상장 문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3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도 상장기업의 중복상장 문제가 우리 증시의 저평가 원인 중 하나라고 다시 꼬집었다.
시장에서는 중복상장 금지가 국내 자본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이번 개혁방안은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의 초석이 될 것"이라며 "지주사들의 NAV 할인율을 축소시키는 한편, 지배주주의 자본 배분 자율성은 축소되고 시장의 감시와 통제 기능은 강화되는 구조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