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유값 1,900원 근접…"운송료 절반이 기름값" 현장 비명
"일할수록 적자 구조"…지원 제도 개편 요구 확산
"기름값 때문에 일을 쉬고 싶어도 고정비가 무서워 못 쉽니다."
중동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화물차 기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운행할수록 손해라는 하소연이 나오지만, 차량 할부금에 지입료·보험료까지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 앞에 핸들을 놓을 수도 없는 처지다.
2일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경유 가격은 리터(ℓ)당 6.51원 오른 1천890.68원을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루 수백 ㎞를 운행하는 화물차 기사들에게 유류비 상승은 곧 수익 감소나 다름없다. 화물차 기사들 사이에선 "운송료의 절반이 기름값으로 나간다" "일을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라는 반응도 적잖다.
◆"고정비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운행"
대구를 거점으로 포항~경기도 구간을 오가는 25톤(t) 화물차 기사 오한기(53) 씨는 "체감으로는 일을 안 해야 할 수준"이라며 "그런데 일을 쉬면 고정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 씨는 최근 몇 달새 월 유류비가 100만원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유류비 외에도 차량 할부금(200~300만원), 지입료(20~30만원), 보험료(약 30만원) 등 고정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오 씨는 "차를 세워도 돈이 나간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운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행 유가연동보조금 제도가 실질적인 완충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유값이 ℓ당 1천700원을 넘으면 초과분의 최대 70%를 지원하지만, 보조금 상한이 ℓ당 183원으로 묶여 있어 경유값이 1천961원을 넘어서면 추가 상승분에 대한 보조 효과가 사실상 사라진다. 차량별 지원 한도도 있어 오 씨의 경우 월 2천200ℓ를 초과하면 전액 자비 부담이다. 그는 "한 달 중 열흘 정도는 보조금 없이 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송 구조에 따른 체감 차이도 크다. 대형 운송사와 연간 계약을 맺은 경우 유가 상승분이 운임에 일부 반영되지만, 이른바 '콜바리'(콜을 받아 화물을 운송하는 것) 형태로 일하는 개별 운송 기사들은 유류비 상승분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상황에 기사들은 '기름값 절약'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알뜰주유소나 최저가 주유소를 찾아다니는 건 일상이 됐고, 무전기로 지역별 기름값 정보를 공유하며 30분 이상 줄을 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는 화물차 기사 김모(48) 씨는 "단 몇십 원 차이에도 수만 원의 비용 차이가 나 조금이라도 싼 곳을 찾아다닌다"며 "오늘이 최저가라는 생각에 기름을 미리 채우는 게 습관이 됐다"고 했다.
◆등유도 가파르게 상승…농가 부담 '가중'
휘발유와 경유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가운데, 난방용 등유 역시 상승폭을 확대하면서 농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2일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대구 지역 등유 가격은 지난달 1일 1,353.71원이던 가격은 12일 1,602.89원까지 치솟은 뒤 소폭 하락했다.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며 전날 1,571.74원을 기록했다. 한 달 새 약 218원(약 16%) 이상 오른 셈이다.
이처럼 등유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시설 농가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특히 난방비 비중이 높은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화훼 농가 등에서는 유류비 증가가 곧바로 경영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비용 상승이 농산물 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난방비 부담이 커질 경우 생산 단가가 올라 소비자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상기후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농산물 가격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추가적인 비용 요인이 더해질 경우 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지역 한 농가 관계자는 "작물 키우려면 일정온도 유지를 위해서라도 난방비가 계속 든다. 등유 가격이 오른만큼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며 "면세유 공급 확대 등 지원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화물연대 "운송업계 연쇄 위기"…국토위 지원폭 늘릴 것
노동계는 구조적 개선 없이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번 사태는 유가 변동에 취약한 운임 체계와 높은 고정비 구조, 보조금 제도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유가 상승에 따른 부담이 개인 화물차주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동수 민주노총 화물연대 대구경북본부장은 "유가 위기가 올 때마다 그 부담을 화물차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며 "유가보조금 상한선 해제와 함께 긴급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지원이 있어도 겨우 고정비를 넘기는 수준이다. 보조금은 언 발에 오줌 누기나 다름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개인사업자인 기사들을 대상으로 할부금 유예나 저금리 대출 등 현실적인 금융 지원도 검토해야 한다"며 "현재 일부 품목에만 적용되는 안전운임제 역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도 움직이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가자원안보특별법에 따라 자원 안보 위기가 발령되면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자치단체장 판단으로 유류세액 한도를 초과해 유류 구매 비용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최소 운임 보장 '안전운임제' 확대 요구
유류비 부담이 커지면서 안전운임제 확대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운송 노동자들의 과속·과적 운행을 막기 위해 최소 운임을 보장하는 제도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시행됐다가 일몰됐고, 올해 2월부터 3년 한시로 재도입됐다.
하지만 적용 대상은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에 한정돼 있다. 전체 화물차 기사 중 약 95%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화물 노동자들이 전 차종과 전 품목으로 확대를 요구하는 이유다.
현장에서는 제도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최근 재시행된 안전운임이 중동 전쟁 이전 기준으로 책정돼 급등한 유류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안전운임위원회가 현실을 반영해 운임을 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화물업계 관계자는 "기름값이 오르면 일을 더 해야 버틸 수 있지만, 전쟁 영향으로 물류량 자체가 줄었다"며 "높아진 비용을 개인이 아니라 화주와 운송사가 함께 분담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알고 있으나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러 경로로 안전운임제 확대 요구를 듣고 있다"며 "먼저 제도 성과를 분석해 효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하고, 품목 확대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 서면 일몰 폐지 여부, 품목 확대 방향 등을 검토하고 정부안을 제시해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제도의 윤곽이 그려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류비 지원책이 부족하다는 현장 목소리에 대해 정부는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했다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유가보조금 지급 지침 개정, 보조금 지급 비율 한시 상향, 영업용 화물차의 고속도로 심야 통행료도 한 달간 면제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미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다 쏟아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경유 ℓ당 1천700원 초과 가격분에 지급하는 보조금 상한을 높이는 제도 개편 방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연장하는 안 등을 두고 고심 중"이라며 "화물 노동자들이 유가 상승에 취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는 부족함이 있겠지만 정부가 이처럼 노력하고 있음을 알아주시면 좋겠고, 더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도 계속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